[칼럼/육아에세이] 아이를 키운 다는 건
아이를 키운 다는 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손에 똥 묻히는 건 일도 아니고, 설거지 쌓이는 모습에 화가 나다니. 치워도 또 더러워지는 방은 왜 매일 닦아야 하며, 오후 간식으로 뭘 줄지가 도대체 왜 이렇게나 신경 쓰이는 거야.
아들 셋을 키우는 일은 분명 축복받은 일이고 행복한 일이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저녁나절이 되면 심신이 방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다가 먼저 잠드는 날도 부지기수죠. 그럴 때마다 다음 날 아침에 눈뜨면 밤새 불을 켜놓고 잤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또 밤 시간을 그냥 날려버린 것이 아까워 화가 납니다. 그런데 한번은 아내가 이제는 작아서 못 입히는 옷과 삼형제가 물려 입느라 다 헤어진 옷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묻더라고요.
“시간 가는 게 아깝다. 그치?”
이렇게 힘든데 이 시간이 어서 갔으면 하는 게 아니라, 시간 가는 게 아깝다니! 역설적인 표현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아이가 조금씩 크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복의 팔다리가 짧아서 못 입히는 날이 오고 잠깐 시기를 놓치면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신발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빨리 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섭섭한 게 사실이죠. 간혹 아이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 더 크지 않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시간은 잡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머지않아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뭘 받고 싶은지 종이에 써놓고 3월부터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순수한 영혼이었을 때가 그리울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힘이 들 때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이 녀석들이 또 언제 아빠를 찾겠나. 힘들다면 힘든 것이고 즐겁다면 즐거운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저에게 육아란 이런 것입니다.
육아는 운전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고 흥분됩니다. 직접 자동차를 몰 수 있다는 사실은 사회적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나아가 오너드라이버가 되는 상상을 하는 건 무척 기쁩니다. 육아도 마찬가지죠. 제아무리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라 하더라도 자기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담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운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설렘과 흥분만 주는 것은 아니죠. 접촉사고 같은 실수도 하고, 때로는 대형사고 같은 아픔을 남기기도 합니다. 늘 배운다는 자세로, 아이들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자만하면 사고 나기 쉽습니다. 육아는 보약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게 만들죠. 늦은 밤까지 밀린 집안일에 원고 다듬는 일까지 하면 잠이 늘 모자랍니다. 그럼에도 아침에는 어김없이 눈이 떠집니다. 깔깔거리며 웃는 막내의 얼굴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축 처진 어깨도 다시 세워주는 아이들의 존재가 보약보다 더 낫다면 과장일까요.
육아는 거울입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한 아이들을 보면, 투명하다 못해 물결이 이는 아이들의 눈을 보면 정직을 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부모들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 뒤 다음에 알려주죠. 어설픈 정보를 사실인양 포장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감정을 솔직하게 설명합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말입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거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제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용기를 아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보약처럼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최면을 걸어 익숙지 않은 일도 기꺼이 하게 만듭니다. 또 적당히 살아왔던 저를 삶에 솔직하고 충실하도록 바꿨습니다. 이게 다 육아가 한 일입니다. 제가 아이를 키웠지만 결국 제가 더 커버렸습니다. 이렇듯 나를 성장시키는 육아의 힘.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아이 셋 키우는 남자의 칼럼 다음 편 ‘아이를 통해 배우는 것’에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