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육아에세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건
아이가 태어났다는 건
“통통한 볼과 투명한 입술. 위로 말려 올라간 윗도리 밖으로 살포시 나온 배,
아무리 길게 뻗어도 절대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는 짧은 다리. 그리고 그 끝에
알맞게 붙어 있는 도톰한 발. 천사가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요.”
첫째가 태어나던 날. 아내의 손을 잡고 펑펑 울다가 얼떨결에 아기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바람은 피우지 않겠다! 떳떳하게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분만실에서는 아기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도 다시 태어납니다.
그 이후로 지난 8년 동안 세 아들을 키웠습니다. 군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총 대신 젖병과 기저귀를 잡았습니다. 그동안 오로지 아이가 태어난 덕분에 돌아보고 되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여리기 때문에 기온이나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에어컨을 세게 틀거나 창문을 활짝 열거나 보일러 온도를 낮추거나 하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일상의 잔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육아는 체력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전쟁 같은 하루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 끝나지요. 퇴근길에 아내와 즐겼던 맥주 한잔. 달을 보며 산책하다 마시는 신선한 밤공기, 정갈하게 정돈된 거실이며 서재. 무엇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의 풍성함. 아이를 키우는 한 사람으로서 가장 목마른 것은 바로 혼자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들도 있지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저지레가 시작되면 가슴에서 뜨거운 울분이 솟구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힘들고 지치는 일에서 어떤 배울 점이 있었냐고요? ‘나도 이렇게 자랐고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자란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다 이렇게 크는 거야.’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저지레가 시작되었다면 눈 딱 감고 6개월만 기다리세요. 아이는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을 표현할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 것 중에 하나는 아내의 소중함입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아내와 싸울 일이 더 많아집니다.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의 문제가 부부간 갈등의 진원지가 되지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아내와 오랜 대화 끝에 이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첫째, 모든 훈육은 감정을 진정시킨 뒤 대화로 풀어간다. 둘째, 훈육이 시작되었다면 전적으로 맡겨두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다투지 않는다. 셋째, 그날의 훈육은 아이들과 함께 그날 결산한다.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뽀얀 먼지에 켜켜이 쌓여 있던 깨끗한 도화지를 꺼내 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잊고 살았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빨강머리 앤, 미래소년 코난이나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를 그 위에서 다시 만나는 느낌이랄까요. 끝없는 순수의 세계로 들어가면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놓치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그로 인해 지난날 아버지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도 다 아이들 덕분입니다.
육아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그릇이 큰지를 알려주는 시험대 같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존재만으로도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아이 셋 키우는 남자의 칼럼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