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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 모음> 고은의 '낯선 곳' 외
22 도토리 2013.04.02 21: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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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 모음> 고은의 '낯선 곳' 외

+ 낯선 곳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고은·시인, 1933-)


+ 사람들은 경이롭게 여행한다

사람들은 경이롭게 여행한다
산의 높은 정상으로
바다의 거대한 파도 속으로
강의 긴 항로를 따라서
해양의 광대한 에움길을 돌아
별들의 순환하는 움직임을 보며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 자신을 그냥 지나간다
(성 어거스틴·신학자이며 교부, 354-430)


+ 여행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여행
  
그것은 생활의 연장
방랑과 유리하는 자의 속성
다만 떠나는 연습일 뿐

떠난 자리에
되돌아올
어김없는 약속을 남기고

비운 자리만큼
그 무엇을
채워 올 것 같은 기대

깊은 상념을 사유하고
낯선 사물과 따뜻이 조우하며
생경한 거리에서
포근한 인정을 그리워하는

여행,
미지를 향한
갈증 같은 설레임
(김옥남·시인, 1952-)


+ 여행기

스쳐가는 사람들 모두
뭉게구름을 타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들은
나룻배 위에서 한가로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물결은 온갖 꽃으로 만발하여
권태를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노을이 멈추는 마을까지
산 몇 개쯤은 단박에 열렸고

모닥불 사이에서 날밤夜이
노릇노릇 무르익을 때쯤이면
별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임영준·시인, 1956-)


+ 기차 여행 같은 인생  

가슴이 답답하고
울적한 날에는
경원선 열차를 타고
종착역까지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습니다

열차가 멈출 때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처럼
인생의 여행도
종착역 닿기 전에
내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질병의 역에서
사고의 역에서
실패의 역에서
혹은 달리는 열차에서
창 밖을 향해 생명을 버립니다

특실의 삶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앉아가지 못하고
힘들게 서서 가면 어떻습니까

인생의 종착역에는
누구나 다 내리는 것입니다
그대의 손을 잡고
사랑의 술에 취하는
멋진 여행을 하십시다
(손희락·시인, 대구 출생)


+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그 날은 누구를 꼭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아서 좋을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달라 보이고
살아 있는 표정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골 아낙네의 모습에서
농부의 모습에서
어부의 모습에서
개구쟁이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알고 싶습니다.

정류장에서 만난 삶들에게 목례를 하고
산길에서 웃음으로 길을 묻고
옆자리의 시선도 만나
오며 가며 잃었던 나를 만나야겠습니다.

아침이면 숲길에서 나무들의 이야기를 묻고
구름 떠나는 이유를 알고
파도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저녁이 오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하룻밤에 만들고 싶습니다
돌아올 때는 비밀스런 이야기로
행복한 웃음을 띄우겠습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어요.
아무도 만난 사람은 없어요.
아 도시에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방심한 마음으로 기다렸을 뿐이지요.
멀리서 누군가 손 흔들면 나도 발돋움하며
따라서 손 흔들었지요.
아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동화책 한 권을 다 읽었어요.
동화처럼 살고 싶어요. 아니면 영화처럼.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그저 나무처럼 서있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어요.
어디선가 지금 기차가 지나가고
영화관 속에선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배낭 위에 걸터앉아 나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여행이란 다 그래요.
사실은 기다리는 연습인 걸요.
기다리는 동안 그저 우두커니
스스로를 보는 거죠.
내가 나를 기다린다는 말, 우습나요?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머지 않은 훗날
누군가를 기다리며 당신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어딘가에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거예요.
(김재진·시인, 1955-)


+ 여행자를 위한 축도

하나님의 축복이 네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너보다 앞서 가시며,
네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곁에 계시며,
그 팔로 너를 감싸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뒤에 계시며,
어두운 세력이 너를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네 아래 계시며,
네가 넘어지려 할 때에 너를 든든히 받쳐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옆에 계시며,
네가 슬퍼할 때에 너를 위로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네 안에 계시며,
너를 치유해주시고,
하나님이 너를 감싸주시어,
근심에 싸여 있을 때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노라.
마치 하늘에 태양이 있듯이 하나님이 네 위에 계시며,
그 능력으로 너를 강건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요르그 징크·독일 신학자이며 저술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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