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기 전 / 이나명

조그만 비닐봉지 하나 풀밭에서 놀고 있다

겅중겅중 뛰며

딩굴딩굴 구르며

노란빛 얇은 비닐이 몸의 전부인 비닐봉지

한때 가득 채웠던 속의 내용물들 언제 다

비워 냈는지

벌린 입안 가득 바람을 머금고 놀고 있다

쥐똥나무 울타리에 매달린 분홍 메꽃들

동그랗게 외눈 뜨고 내다보는 세상 놀이터

조그만 비닐봉지 하나 놀고 있다

저 혼자 즐거워 놀고 있는 아이처럼

해 지기 전 누군가 데리러 올 아이처럼

겅중겅중

딩굴딩굴

놀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그곳에서

누군가 저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