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앓고 너는 나를 앓고 있다 

 

                      / 김정한 

힘이 되어 주기 위해 너를 찾지만

너에게 힘을 얻고 돌아온다.

너를 만나면 내 얼굴에 빛이 난다.

몸이 가볍다. 영혼이 맑아진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모두가 깨끗하게 정리된다.

 

서로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순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네 마음은 아마 연둣빛일 거야. 

시린 겨울 햇빛을 받아 받아,

느리게 투명해진 연둣빛 풀.

그 결을 닮은 네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수줍게 웃으며 사랑을 말한다. 

미소까지 연둣빛이다. 향까지 상큼하다.

기꺼이, 가장 내밀한 곳으로 이끈다.

네 결에 물들어 나도 함께 춤춘다.

빛이 난다. 투명하다. 가볍다.

우리는 함께 구름 위를 걷고 있다.

서로를 비추며 물들고 깊어지며 춤을 춘다.

나는 너를 앓고 너는 나를 앓고 있다. 

김정한 < 나와 당신의 거리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