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시 모음> 강남주의 '하루살이의 하루' 외

+ 하루살이의 하루

가을.
하오의 햇볕.
저 많은 하루살이들이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를
날아오르고 있다.

반투명의 날개에서
튕겨나는 햇살
그것들의 삶의
천진한 절정.

공자도 맹자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장자의 불가해한 우주도
그 절정 속에서
가득히 넘치고 있다.

가을,
그들의 전 생애가
그 하루 속에서
가득히 넘치고 있다.
(강남주·시인, 1939-)


+ 하루살이  

해질 무렵 수로 위에
하루살이 떼들의 춤의 향연
하루의 일생을
저리도 축복하고 가는데
팔십의 인생도 짧다고 하는
인간들이 부끄럽구나
(심시인·시인)


+ 하루살이
    
하루를
살아도
춤출 수 있는
여유
하루만 살아도
사랑하는 배짱
보이지 않는
힘으로
정열적으로 산다
하루 운명
하루를 살아도
내일을 두려워 않는
한없는
삶의 소망.
(이승복·시인, 1959-)


+ 하루살이
  
하늘의 빛을 향해
쉴새없이 날개 짓을 해도
허공에 묻어둔
바람 한 자락 붙들지 못했다

사랑도 하루
절망도 하루
너는
오늘 하루를
백년처럼 살고 있구나

가슴 차 오르는
그리움은
노을 끝에 사무쳐서
떨어져 내리는 별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구나.
(美石 김정호·시인, 1961-)


+ 하루살이 - 덧없음
    
그리움이란
네 짧은 삶 속에서는
지나친 사치

네 몸 속에 지니기에는
버거운 물결

털고
버리고
날아도

네 갈 길 가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

네 날갯짓은
나는 게 아니라
불꽃 속으로 들어가는
몸부림이었어.
(조성심·시인, 전남 목포 출생)


+ 하루살이  

하루살이
그는 단 며칠간의 생명을 위하여
수년간 물 속에 숨은 애벌레 속에서
작은 날개의 부화를 기다린다.

먹지도 않고
내장도 없고
몇 밀리의 조그만 날개
그래도 분명 그는 살아 잇다.

붕 붕 붕
제법 요란한 날개 소리
잠든 게으른 용을 깨우는 극성
누가 너를 하루살이라 비웃고 있느냐.

오래 살면 무엇하나
많이 먹으면 무엇하나
지상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도
하루살이
너는 한 여름밤 인생을 비웃으며
귓가에 맴돌아 짧은 하루를 노래하고 있다.

아침에 시작된 삶이
한 저녁을 채우지 못해도
하루살이
너의 이름과 더불어
나의 짧은 하루는
풀 끝에 맺힌 이슬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웃고 있다.
(문병란·시인, 1935-2015)


+ 하루살이  

낡은 책장 사이에
빛 바랜 잉크처럼 찍혀 있는
하루살이를 바라본다.

그 한 점이
블랙홀 되어
나를 붙든다.

태양 같은 알전구 아래
하루를 백 년같이
춤추며 公轉하던 시절

플라톤의 글줄 사이를
방황하다가 그대는
고단한 생을 마감했던가

다시 살아나
물밀져 오는 고뇌를 부려 놓고
멀리 사라져 가는
한 점 블랙홀

화석으로 굳어져
존재의 무상을 일깨우는
千劫 세월 속의 한 점        
(지창영·시인, 1955-)


+ 하루살이의 기도

겨우 하루밖에 못 사는
제 앞에서

살아가는 일이 지루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찰나의 시간도 더없이 소중한
제게는 너무 사치스런 말이니까요.  

오, 주님!

어찌 제 목숨은
이다지도 짧은 것입니까

한 계절도 한 달도 아니고
겨우 하루뿐이라니 말이 됩니까

사랑이 많으신 당신께서
왜 저 같은 존재를 만드셨는지

혹시 제가 당신의 실패작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주님!

태어나 살고 죽는
이 모든 일이 하루만에 이루어지는

저의 기막히게 짧은 삶에도
나름대로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라도 들지 않으면
저는 미칠 것 같습니다.

오,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빨리 알려주십시오

제게는 찰나도
너무너무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