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묵상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나 하나 없어도' 외  

+ 나 하나 없어도

나 하나 없어도
세상은 안녕할 테지만

내 존재의 소멸은
몇 사람에게는 슬픔이 되리.

너 하나 없어도
세상은 건재할 것이지만

네 존재는 누군가의
가슴속 별 하나로 뜨리.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너른 세상에서

너와 나는
지극히 작고도 소중한 존재이리.


+ 나는 작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작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작고 볼품없다

세상의 지위나 명예는
가진 게 없다

내 소유의 집 한 칸도 없고
지갑에 돈도 거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고와 느낌의 폭도 작고
마음 씀씀이도 작다

사랑도 믿음도 상상력도  
남부끄럽게 작다.

이렇게 작은 내 모습을
슬쩍 감추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작은
내 자신이 좋을 때가 많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전혀 섭섭할 것 없이

그냥 한 송이 들꽃같이
살다가 가면 되니까.


+ 지구와 나

지구는 넓고
나는 작다

한 점 먼지같이
작디작다.

나 하나
지구상에 없어도

아무 탈없이
지구는 굴러갈 거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 심각해지지 말 것
행여 자만하지 말 것.

다만
나의 가슴속에

지구를 담을 것
지구를 내 몸같이 사랑할 것.  


+ 담쟁이와 나

나는 담쟁이같이
높은 벽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느릿느릿 나아가는
담쟁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상의 많은 길들을
걷고 또 뛰어갈 수 있다.

담쟁이가 굳세게
자신의 길을 가면서

멋진 생을 이루어가고
세상 풍경을 바꾸어놓듯이

나도 꿋꿋이
나다운 길을 개척하면서

뜻 있는 삶을 가꾸고
지상의 한 점 풍경이 될 수 있다.


+ 들꽃과 나

나는 참
이상합니다

지상의 수많은
꽃들 중에

내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겨우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이고요

그것도 남들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들꽃이니 말이에요.

아마 나도
세상에서 볼품없는 존재

사람들의 눈길 안 닿는
작디작은 존재라서 그런가봐요.


+ 꽃과 나

꽃 지는 것을
덧없다 말하지 말자

꽃이 떠난 곳은
새 생명이 움트는 곳

꽃 진 그 자리에
열매 돋으니

지는 꽃 앞에서
슬픈 눈물 흘리지 말자.

꽃은 죽어
열매를 남기는데

나는 죽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꽃 떠난 자리에는
새 생명이 움트는데

나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