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시 모음> 정연복의 '바람의 노래' 외

+ 바람의 노래

모양도 없다
빛깔도 없다

향기도 없다
머물 곳도 없다

가진 거라곤
보이지 않는 흐름뿐.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소유에 집착하고 얽매일
일이 없다

산 넘고 들판을 지나고
강과 바다를 건너

온 세상 끝까지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자랑할 것 하나 없지만
남부러울 것도 하나 없이

너른 허공을 흘러 다니는
나의 가벼운 생.  


+ 바람

없는 것 같은데
있다

꽃잎을 춤추게 하는
바람.

있는 것 같은데
없다

내 가슴속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게

요즘 나는
많이 부끄럽다.


+ 바람

바람이 불어
한줄기 바람이 불어

꽃잎이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바람이 나서
이따금 신바람이 나서

인생이 즐겁고
슬픔도 괴로움도 이겨냅니다.

작은 가슴 사랑에
들뜨게 하는 봄바람

쓸쓸히 낙엽을 흩날리는
늦가을 바람

이런 바람이 있어
세상은 살아갈 만합니다.


+ 바람의 생  

바람같이 흐르는 세월
바람같이 살자.

세상 것들 잡으려는 욕심에
허둥대지 말고

다채롭기 짝이 없는
세상 풍경에 눈길이나 주면서

하루하루 두루
지상을 여행하듯

살림이야 좀 궁하더라도
가슴은 넉넉하고 여유 있게

발걸음은 가볍게
정신은 맑고 단순하게

한세상 바람같이
자유롭게 살다가 가자.


+ 나무와 바람

나무는 잠자코
바람을 기다립니다

늘 조용히
바람을 생각합니다.

안달하지 않고
마음 들뜨지 않고

바람이 찾아올 때까지
바람을 기다립니다.

잎새를 쫑긋 세워
허공에 귀기울여

저만치 있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이렇듯
무심한 듯 아닌 듯

온몸 온 마음으로
기다려온 바람이기에

이윽고 찾아온
바람 한줄기에도

너무나 반갑고
너무너무 기뻐서

나무의 온 잎새들
춤추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