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 허수경

        나는 그렇게 있다 너의 눈 속에

        꽃이여, 네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너를 바라보던 내 속에

        너는 있다

        다람쥐여,연인이여 네가 바삐 겨울 양식을 위하여 도심의 찻길

      을 견디다 차에 치일 때

         바라오던 내 눈 안에 경악하던 내 눈 안에

         너는 있다

         저녁 퇴근길 밀려오던 차 안에서 고래고래 혼자 고함을 치던

      의 입안에서

         피던 꽃들이 고개를 낮추고 죽어갈 때

         고속도로를 달려가다 달려가던

         얼어붙은 명태들을 다 쏟아내고 나자빠져 있던 대형 화물차의

         하늘로 향한 바퀴 속에 명태의 눈 안에

         나는 있다

         나는 그렇게 있다 미친 듯 타들어가던 도시 주변의 산림 속에

         오래되 과거의 마을을 살아가던 내일이면 도살될 돼지의 검은

      털 속에

         바다를 건너오던 열대과일과 바다 저편에 아직도 푸르고도 너

       른 잎을 가진

          과일의 어미들 그 흔들거리던 혈관 속에

          나는 있다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뻘게를 찾는바닷가

          작은 남자와그 아이들의눈 속에 나는 있다 해마다

          오는 해일과 홍수 속에 뻘밭과 파괴 속에

          검은 물소가 거너가는 수렁 속에

          과거에도 내 눈은 그곳에 있었고

          과거에도 너의 눈은 내 속에 있어서

          우리의 여관인 자연은 우리들의 눈으로

          땅 밑에 물 밑에 어두운 등불을 켜두었다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올 때

          너의 눈빛 그 속에나는 있다

          미약한 약속의 생이었다

          실핏줄처럼 가는 약속의 등불이었다

                   ∵ 허수경 시집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