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인의 기도 / 정연복

주여!

저는 가난한 시인이라
생활이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빛나고 높은 것들 앞에서
솔직히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시인의 길에 잘못 접어든 건 아닐까
후회하는 마음도 가끔 고개를 쳐듭니다.    

하지만 주여!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가진 게 너무 많습니다

갖고 싶어 욕심나는 것보다
과분하게 누리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하루 세 끼 따뜻한 밥을 먹고
옷장에는 여벌의 옷도 수두룩합니다

건강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어
아직도 힘이 넘칩니다

저를 시인이라 자랑하는 아내가 있고
착하고 예쁜 아들딸도 있습니다

저를 아끼고 좋아하는 벗들이 있어
외로움도 견딜 수 있습니다.

하오니 주여!

앞으로 남은 생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활짝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게 하소서

진선미(眞善美)를 노래하며
시인의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