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이지데이 2013.04.02 10:18:44
이별 후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넌 전 여친 전화번호 기억 나?”
“음…… 기억하는 거 같은데…… 왜?”
“아니, 신기한 일이지. 난 말야. 분명 한번도 전화번호를 외워서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도 없어. 그런데 글쎄 헤어지니까 너무 선명하게 그 번호가 기억이 나는 거야. 저장된 목록메시지, 통화기록 주소록에서는 다 지웠는데 말야. 머리 속에 있는 건 내 마음대로 삭제가 안되잖아.”
“시간이 지나면 까먹겠지. 그게 뭐 큰 문제야?”
“야 왜 큰 문제가 아니야. 혹시 아냐, 정신이 나간 어느 날, 내가 전화할 수도 있잖아. 그건 완전 대형사고지.”
“그게 무슨 대형사고야, 그럴 수도 있지.”
“아, 됐어 난 창피해. 쪽 팔린 행동이지 그건. 됐어. 아 진짜 미치겠다. 아니 왜, 번호가 기억이 나지?”
P는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휴대폰 번호가 기억이 난다고 괴로워했다. 딴에는 자신이 술이라고 먹은 날, 혹시나 전화 걸어서 못난 꼴 보이는 것이 아니냐고 염려했지만, 아마 그 이면에는 상대는 자신의 전화번호 따위는 아예 기억 속에 없을 것 같은 억울함이 더 커 보였다. 아, 이를 어쩌나. 헤어짐이란 그런 것이다. 당장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져서도 문제이지만, 남아있는 것들을 처치해야 되는 작업도 필요한 일이니, 아 이를 어쩌나?
이별 후 당신은 무엇 때문에 가장 미치겠나요?
곳곳에 난무하는 기억
가장 미치는 건 어디 가도 그 사람과 가지 않았던 곳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자주 가던 맛집, 찻집, 쇼핑하던 곳, 같이 걷던 거리, 집 앞, 회사 앞, 동네 놀이터, 공원. 심지어 퇴근 길에는 같이 가던 숙박 업소까지 보이죠. 신경 안 쓰면 된다고는 하는데, 눈에 보이고 눈에서 감지 됨과 동시에 떠오르는 기억까지는 어쩌지 못하니까요. 내 머리가 PC라면 포맷이라도 하겠는데 말이죠. 내 가슴과 머리는 이미 이별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인데, 숨도 쉬어지고, 전원도 돌아가나 몰라요. – L씨 27세
상대의 음성
여자에게 청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을 걷다가, 환청인지, 비슷한 목소리인지 몰라 뒤돌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성우 출신이었던 그는 사실 TV만 틀어도 비슷한 중저음이 나와요. 한번은 홈쇼핑을 보다가 흠칫 놀란 적도 있다니까요. 너무 목소리가 똑같아서, 그 사람이 정말 TV에라도 나온 줄 알았어요. 헤어지고 한 달쯤 되었을까? 그가 그리워 미치겠는거에요. 꿈 속에서 나타나더라고요. 그런데 재밌는 건 꿈 속에서도 우리는 싸웠어요. 잠에서 깨었는데, 그의 음성이 생생하더라고요.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던 목소리. 그래서 더 차갑게 느껴졌던 그런 목소리였어요. – W씨 31세
어딘가 남아있었던 그의 물건
정말 몰랐어요. 그게 거기에 있는지. 우리는 오래 만났고, 부모님끼리도 아는 사이여서 가족처럼 지냈거든요. 집도 오가면서. 그런데 그가 잃어버린 물건이 하나 있었어요. 너네 집이 있니, 우리 집에 있니, 한참을 찾아도 안 나오더니, 어이없게 내 방 서랍장에서 나왔어요. 보자마자 대번에 알았죠. 찾았다. 찾았지만 돌려줄 수는 없는 거였어요. 버리기도 뭐해서 갖고는 있는데 볼 때마다 생각이 나죠. – K씨 27세
사랑하지 말 것을, 하는 자책, 자괴감
사랑이 끝나면 제일 괴로운 건 이거에요. 5년의 연애를 마칠 때 다짐 했었거든요. “당신 이런 사랑, 이런 연애 안 한다고!” 그런데 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패턴이 비슷하더라고요. 그 연애 패턴이 가진 장점보다는 단점이 너무나 치명적이라는 걸 알면서, 어느 새 익숙한 방식대로 또 연애를 하고 사랑을 키워가고 있더라고요. 결국 똑 같은 이유로 헤어졌어요. 이러자고 어리석게 또 사랑을 믿었나 싶고, 왜 그랬을까? 차라리 내 방어를 좀 더 할 것을. 누군가의 말처럼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는데, 난 자유로움보다는 또 사랑을 택해서 이런 상처를 받나 싶고. 내게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게 너무 괴롭더라고요. 이별의 아픔보다, 나에 대한 자책이. – S씨 34세
혼자 있을 때면 찾아오는 그리움
제일 생각나는 건 출퇴근 때에요. 출퇴근을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출근의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고, 퇴근길에는 전화통화를 자주 했거든요. 아무래도 평일에는 자주 못 보니까. 직장인들은 일상이 거의 쳇바퀴도 시간도 일정하잖아요. 때문에 그와 연락을 주고 받는 시간도 일정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되어도 메시지가 오거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아요. 오롯이 정말, 오롯이 혼자인 거죠. 그럴 때면 상대가 더 그리워져요. – D씨 27세
나 따위는 다 잊고 잘 지낼 것 같은 억울함
왜 드라마에 이런 명대사가 있었잖아요. ‘정말 아픈 건 그 사람은 내 생각 따윈 안 하는 것 같애, 나만 이러는 것 같애. 그 사람은 나 따윈 다 잊고 행복할 겨를 밖에 없는 것 같애.’ 이 대사. 정말 그 사람은 그럴 거 같거든요. 하루 이틀쯤 저조하겠죠. 그 사람 말마따나 진심이었다면,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헤어짐을 준비했던 사람처럼 그랬거든요. 태어나서 외면이라는 걸 전 처음 당해봤거든요. 한번도 누군가에게 외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도 안해봤어요. 그런데 그가 헤어지자고 했거든요. 차라리 여자가 생겼다면 마음껏 욕이라도 해줄텐데, 그냥 그 사람은 지치고 힘들대요. 자기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했어요. 나를 만나서 자신이 없어질 것 같았다면, 저와 헤어진 지금은 본인을 찾았을 거 아녜요? 누군가와 지금도 웃고 있거나, 좋아하는 게임이나 TV프로에 꽂혀 막 웃고 있겠죠. 정말 억울한 일이죠. 헤어지고 난 뒤 난 하루도 그 사람 생각이 나지 않는 때가 없는데 말이에요. – J씨 29세
| 글 : Arom(ez작가) | 제공 : 이지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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