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꿰뚫어보는 대화의 기술(1)
서른라이프사전 2011.10.06 13:21:05
상대를 꿰뚫어보는 대화의 기술(1)
며칠 전 사교 모임에서 한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녀는 갓 서른을 넘긴, 한눈에 봐도 욕심 많고 똑똑한 여자였다. 서로를 간단히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최근 관심사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데 5분, 10분, 30분이 지나도 대화가 자꾸 겉돌았다. 보통 어느 순간이 되면 서로 몰입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생겨 맞장구를 치거나 관심을 기울이게 되기 마련인데 왜 그런지 그녀와는 그런 교집합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뭔가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까지 고개를 들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번 책이 첫 책이세요?”
“아니요, 두 번째 책인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전 이번에 소설을 준비 중인데 소설이라는 게 자기계발서와 달라서 어렵네요.”
“요즘은 소설이 대세인 것 같아요.”
우리가 나눈 대화의 일부분이다. 얼핏 보면 매우 이성적으로 평범한 대화를 이어간 것 같지만 이 대화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메시지들이 칼날을 숨긴 채 상대방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 오감으로써 서로를 불편하게 하고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늘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했고, ‘이제 너랑은 영원히 빠이빠이’라고 다짐했다. 대체 우리의 대화엔 어떤 말들이 오갔던 것일까? 멀쩡해 보이는 이 대화에 숨겨진 비밀을 잠깐 파헤쳐볼까?
“이번 책이 첫 책이세요?” (너 책 좀 써봤니? 내가 보기에 넌 나보다 한 수 아래거든!)
“아니요, 두 번째 책인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게 잘난 척하는 너는 몇 쇄나 찍었니?)
“전 이번에 소설을 준비 중인데 소설이라는 게 자기계발서와 달라서 어렵네요.” (얼마나 팔렸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난 소설가 출신이라고! 네가 소설을 아니?)
“요즘은 소설이 대세인 것 같아요.” (아이고! 소설도 소설 나름 아니겠니?)
우리는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침을 뱉고 있었고, 다정한 말투로 보이지 않는 치열한 자존심 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이처럼 표면상으로 보이는 교류 외에 숨겨진 의사가 뒤로 전달되는 대화를 ‘이면 대화’라고 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한때 히트 쳤던 ‘쇼를 하라’의 광고 중 한 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아!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가 바로 이면 대화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다 망가진 세탁기를 발로 뻥 차며 능청맞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실은 “아들아, 세탁기 좀 바꿔다오!”라는 숨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면 대화’는 일상 속에서 참 많이 발생한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한참 수다를 떨고 났는데 뭔가 찝찝하고 허망한 느낌을 받았을 때, 무시당했다거나 의도적 접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혹은 오랜 대화 끝에도 아무것도 나누지 못한 아쉬운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진짜 대화가 아닌 가짜 대화, 즉 ‘이면 대화’를 나눴을 확률이 높다.
위 글은 책비에서 출간한 <서른라이프사전>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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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른라이프사전 | 제공 : 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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