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타가 공인하는 A+급 노총각 킹카가 원하는 여자는? 잘생기고, 능력 있고, 성격 좋고, 집안까지 좋아 서른 중반임에도 여전히 ‘킹카’로 군림하는 A+급 킹카가 결혼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자발적 노총각’을 자처하는 것을 보면, ‘대체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저렇게 까탈을 부리나’ 싶어 눈을 흘기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여자가 과연 예쁘고, 일 잘하고, 성격 좋고, 집안까지 좋은 A+급 노처녀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화려한 싱글 생활을 질릴 때까지 즐긴 남자일수록 종국에는 ‘좋은 집안의 나이 어린 여자’와 결혼해, 그를 탐낸 숱한 노처녀 추종자를 좌절로 몰아넣기 일쑤다. 가까운 예로, ‘노처녀들의 로망’이던 김현철과 윤종신이 각각 아홉 살, 열두 살 차이 나는 ‘어린 신부’를 맞이했을 때, 분명 대한민국의 많은 ‘언니’가 실망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 것 같던 신동엽이 여덟 살 차이 나는 미모의 PD와 결혼을 발표했을 때, 나는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어린 신부’가 아니었더라도 김현철, 윤종신, 신동엽이 나와 결혼할 확률은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사회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전문직 동년배 여자와 결혼했다면, 그들이 세련된 문화 취향뿐 아니라 삶의 무게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여자를 선택했다면, 이렇게까지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능력 있는 남자와 어린 여자의 조합이 공식화되는 현실이 슬펐고, 놀 만큼 논 남자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자’를 채가는 형국이 얄밉기까지 했다. 과연 신분과 나이의 벽은 개인의 능력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일까?
그런데 얼마 전 대학 동창에게 연애 상담을 하던 나는 능력 있는 노총각이 ‘좋은 집안의 어린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신분과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서른을 넘기면서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남자를 경계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할까? 공주병에 걸린 추녀처럼 남자가 일방적으로 다가오기만을 바라면서, 다만 ‘그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할까?’ 의심했다. 가끔 도가 지나쳐 그에게 무관심한 척하며, 그의 호감도를 시험하기도 했다. 사실 서른 넘은 남자가 평범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열렬히 구애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 친구의 말은 이랬다. “나이 든 여자와 연애하는 건 재미가 없어. 어린 여자애들이 훨씬 솔직하고, 용감하거든. 내가 영화 한편 보자고 하면, <디 워>가 보고 싶다는 둥 <화려한 휴가>가 보고 싶다는 둥 적극적이거든. 그런데 나이 든 여자들은 ‘그럴까요?’가 전부야. ‘전 아무 거나 좋아요’라는 태도로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는 거지. 아마 이전의 상처 때문에 방어기제가 발동한 거겠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그런 여자가 재미없어. 그런데 가끔 그렇게 소극적인 태도에도 매력적인 여자가 있지.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대시하면, 어느 날 소개해준 친구에게 ‘그 남자 바람둥이 같아’라는 말을 듣게 되더라. 자신은 꼭꼭 감추고 나만 뚫어져라 관찰하는 여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탄력 있는 피부와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여자’가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어린 여자의 ‘순수한 마인드’다. 남자가 예약한 레스토랑을 평가한 후 별 다섯 개를 주며 칭찬보다 “이렇게 멋진 레스토랑은 처음이에요”라고 감탄하는 여자에게 순수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허세와 허풍으로 점철된 남자의 모험담을 비웃는 대신 순진하게 100% 믿고 감탄해주는 여자, 남자의 실패를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손을 잡아주는 대신 좌절감을 잊을 수 있도록 환하고 밝게 웃어주는 여자, 남자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멋진 여자 행세를 하느라 쿨한 척하기보다 질투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솔직한 여자, 바쁜 남자를 배려하느라 데이트 횟수를 줄이는 여자보다 투정을 부려서라도 데이트 횟수를 늘리는 철없는 여자에게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발견하는 것이다. 갑자기 대학교 때 순진하기 이를 데 없던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떠올랐다. 그녀는 누구라도 눈치 챌 수 있는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눈치가 없어서 ‘내가 남자친구라면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1학년 2학기가 되자 그녀는 ‘퀸카’ 자리를 넘보는 인기녀로 등극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눠본 남자들 대부분이 그녀의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모습에 빠져들었다. 한 남자 아이는 “어쩐지 그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라고 말했으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여자의 순수함은 눈물보다 더 큰 무기였던 것이다. 순수한 여자를 선호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점은, 사회생활을 오래한 경력자일수록, 빠르게 승진한 성공녀일수록 ‘순수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언니’들의 노련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냉정하고 치사한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면, 이상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워커홀릭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억척스럽게 일하고, 프레젠테이션에서 성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승부욕을 불태우는가 하면,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해 동료를 냉랭하게 대하기도 한다. 이 정도라면 순수성을 잃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순수하니까. 그런데 당신이 전쟁터 같은 삶에서 승리를 거두려고 노력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한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비합리적인 상황을 유연하게 모면할 수 있는 노련미와 우리가 흔히 ‘센스’라는 말로 포장하는 눈치, 속으로는 눈물이 나도록 화가 나도 겉으로는 시원하게 웃으면서 인정하는 포커페이스 능력 등 업무 외적인 테크닉으로 무장하게 된다. 때로는 완벽한 여자를 연기하기 위해 ‘아는 척’ ‘있는 척’할 때도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능력이 ‘프로페셔널 마인드’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타성에 젖은 테크닉이 순수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늙은 여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남자 동료들이 어리바리한 미모의 신입 여사원에게 몰려드는 것을 욕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업무 능력이 부족한 신입 사원이 환영받는 이유는 열정 때문이다. 세상과 지인에게 배반당한 경험이 없거나 적은 그들은 회사 혹은 선배의 말을 100% 믿고 따르며, 최선을 다한다.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일. 무모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고집해 주변의 걱정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신입 사원의 매력이다.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는 비현실적일지라도 매너리즘에 빠진 선배들의 머리를 프레시 업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또 눈치 없는 신입 사원이 상사의 기분을 거슬리게 해서 사무실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 비합리적인 업무 처리에 대해 솔직하게 대항하는 용기 덕분에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순수한 매력’을 되찾으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사회적 경험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더불어 얻게 된 몸과 마음의 ‘묵은 때’를 벗는 것이다. 키워드는 ‘자신감’. 세상을 살다보면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실패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자아가 확고하기에 마음속에서 진정 원하는 것,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다 실연을 당해도 자신감 넘치는 여자라면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속상하지만 다음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 더 멋진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는다.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고 자신감이 생기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데 망설이지 않게 되는 것. 한마디로 ‘순수한 여자’로 부활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