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for home 이달의 미술전
 

환갑의 둥섭

부암동 한 자락에서 오랫동안 대규모 공사가 진행됐을 때 이렇게 괜찮은 미술관이 들어설 줄 알았다면 차 막힌다는 불평을 자제할 걸 그랬다. 지난 8월 말에 오픈한 서울미술관은 개관전의 주인공으로 이중섭을 택했다. ‘둥섭, 르네상스 다방으로 가세!’ 는 이중섭,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에 미술혼을 펼친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희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의 시대로 가 보길 권한다. 





1952년, 부산 르네상스 다방에서 ‘기조전’이라는 이름의 그룹전이 열렸다. 이중섭을 비롯해 한묵, 이봉상, 박고석, 손응성 등 한국 근대 미술을 지켜낸 작가들이 모인 전시였다. 전쟁으로 참혹하던 시대에도 예술은 살아있었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환갑을 맞은 것이다. 이를 기념해 서울미술관은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로 불러들여 당시의 고통과 행복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주헌 관장은 ‘극도로 어렵고 고통스럽던 시절, 예술혼을 지키기 위해 애쓴 우리의 모든 근대 미술가들에 대한 오마주’라 명명했다. 비루한 시대 배경에 비해 작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내면과 행복으로의 열망을 다루고 있다.
전시에서는 그 유명한 ‘황소’와 함께 이중섭이 특별히 사랑한 ‘길 떠나는 가족’,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렸다는 ‘자화상’ 등을 볼 수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명작도 명작이지만, 그림 그릴 종이가 없어 담뱃갑이나 초콜릿 포장지에서 얻은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를 다수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못으로 그림을 그리고 커피물이나 물감을 발라 완성한 은지화는 종이도 없는 가난한 화가 이중섭의 마음을 흔드는 손바닥만한 작은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희망인 것 같아 감동이 더 크다. 전시는 11월 21일까지. 




 

1 _길 떠나는 가족
연도미상
종이에 유채
22X51cm
개인소장
 

2 _자화상
1955
종이에 연필
49x31cm
개인소장 
 

3 _무제
연도미상 은지에새김, 유채
8.5x15cm
개인소장
 

 
글 김선미 팀장 | 자료제공 서울미술관(02-395-0100 www.seoul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