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는 얘기가 불과 몇십년 전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일이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헛헛해진다. 척박했던 그 시절, 밥때는 한차례의 전쟁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구황식의 이름들도 하나같이 처절하다. 꼴두 보기 싫어 꼴두국수가 됐다는 사연도 그렇고, 형편없는 것을 보면 ‘개떡 같다’는 말이 입에 밸 정도로 지긋지긋 했던 개떡도 그렇다. 그러나 늘 예외 는 있듯, 이름 하나만큼은 번드레 한 것이 있는데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는 강원도 영서지방에서 주로 나는 산채다. 1년생 야생초로 사시사철 척 박한 땅에서도 쑥쑥 잘 자란다. 애써 농사를 지어도 보리 서말 얻기 힘든 화전 민들에게, 이 죽을 줄 모르는 잡초는 아주 모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 모진 것이 열에도 쉽게 물러지지 않아 밥과 함께 지어 먹을 수 있으니 결과 적으로는 기특한 것이 됐다 하는 게 맞겠다. 이 곤드레 나물을 넣어 밥을 지어 먹는 것이 곤드레밥이다. 거무튀튀하게 지어 진 밥에 강된장이나 양념간장을 얻어 쓱쓱 비벼 먹는 초자연식 밥!

보릿고개면 하루가 멀다 하고 서글프게 푸르디 푸른 곤드레 나물을 뜯어다 밥 을 지어 먹었을 것이다. 말이 밥이지 밥알 찾기가 더 힘든 시커먼 곤드레밥상 이 들어오면 어린것들은 숨 죽은 나물마냥 풀이 죽었을 것이요, 어미의 속은 그 시커먼 밥마냥 새카맣게 타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곤드레밥을 그리 절절한 심정으로 먹어보질 못했다. 다행히도 보릿고개는 우리 집과 상관없는 것이었으 니 먹어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곤드레밥 향수를 말하는 이들을 보 면 추억 하나를 뺏긴듯한 소외감도 느껴진다. 분명 같은 양의 밥인데도 그 무 게가 어찌 이리 달라 보이는가 하며 속절없는 시샘을 하곤 한다. 배고픔이라는 서글픈 사연마저도 이 향기로운 밥 앞에서 정겨움으로 둔갑해 버리는 것은 세 월의 장난일까 아니면 감정의 사치일까.

최근에 곤드레밥집을 곧잘 보게 된다. 웰빙식으로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청계 산 입구에 자리잡은 어라연도 얌전하게 맛을 내는 곳이다. 특히나 눈앞에서 갓 지어낸 밥을 정성껏 퍼주는 마음 씀이 마음에 든다. 들기름을 두른 다음 쌀과 찹쌀을 넣어 지은 밥은 이미 구황식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건강식이요, 자연식 이다. 압력솥 뚜껑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 포르르 뽀얀 김 속에 나물 향이 폴폴 묻어난다. 차르르 윤기가 나는 갓 지은 밥을 한 수저 퍼 올리면 소나기 같은 향긋함이 쏟아진다. 그래 곤드레밥의 추억이 없다 한들 어떨까. 그 향긋 한 맛에 동참하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