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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사랑이 뭔가요?
3 jkitsjkim 2019.06.17 13:53:58
조회 1,004 댓글 8 신고

연애경험이 별로 없어서 정말 궁금해서 묻습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20대 중반 남자입니다. 전여친은 20대 초반이구요. 헤어진지는 4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 힘드네요.

 

친구너머너머 얼굴을 본적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대화는 데이트어플에서 만나서 시작했습니다. 방학에 해외여행을 갔다가 심심해서 어플을 켰는데 우연히 그친구도 같은 곳으로 여행을 와 어플을 켰었거든요. 그런데 다니는 학교가 거리가 좀 있어서 잘 될 일은 없겠지..했는데. 의외로 잘 통하고, 그 친구가 다른 볼일로 제 학교에 왔다가 저한테 먼저 키스를 한것으로 연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애초반에는 모든게 서툴렀습니다. 첫연애 였거든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2주에 한번정도는 봤고, 볼때마다 항상 풀코스 데이트 스케줄이 준비되어 있었죠. 처음으로 그녀의 친구들도 만났었고, 어쩌다보니 부모님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설프지만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도 했고, 비싼 선물도 하고, 사귀고 있었지만 아직 이 친구를 꼬신다는 식으로 연애를 했어요. 

 

시간이 흐르니 감정이 좀 깊어지더군요. 처음으로 싸우기도 했고, 서로에게 실망도 하고, 말실수도 하고, 어느정도 다른 가치관과 마주치기도 했구요. 아, 자존심이 좀 있구나. 직설적이구나. 눈치가 조금 없구나. 자존감이 좀 낮구나. 그런데 신기하게 그런 일들이 있고난 후 사랑한다는 감정이 깊어갔고, 오히려 그 친구의 단점도 알게되었다는 사실에 기쁘고 고마웠어요. 나중에야 안거였지만 그녀는 그 반대였나봐요. 저에 대해 실망한점, 또 그래서 이 남자랑은 가정을 꾸리고 싶지않다고 적은 일기를 헤어질때 저에게 보여줬어요. 

 

그것도 모르고 전 그 친구를 이해하려고 하고 맞춰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일에, 친구일에, 가족일에 불평 들어주는건 물론이고, 수고했다고 맛있는 요리도 해주었고 (김치볶음밥같은 집밥부터 콜리플라워 퓨레, 관자와 새우, 유쥬 아이올리 같은 고급요리도요). 저는 자취해서 화장실에 욕조가 있었기에 그 친구가 오는 날이면 전신 마사지도 해주면서, 좋아하던 라벤더 향 러쉬 배쓰밤에 따뜻한 물도 받아놨구요. 

 

기타도 치고 노래도 좀 하는 편이라...1주년 기념일엔 가장 좋아한다는 샘킴노래 커버도 녹음해줬고...옷을 대충입는 친구라 예쁜 옷도 선물하고 쇼핑도 같이 가면서 이것저것 입혀봤어요. 너 이렇게 예쁜 사람이라서 다 잘어울린다고. 시세도에서 유난히 눈독들이는건 지루한척 몰래 사진찍어놨다 선물도 몇번 했구요. 

 

눈이 오는날 길이 막혀서 버스를 6시간 타서 도착했지만...논문 작성에 열중이던 그녀를 위해서..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주고, 과일도 씻어다주고...잠오는거 꾹참고 기다렸다 수고했다고 머리맛사지를 해주면서 잠들었어요.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않았고, 너 정도면 더 예쁜 여자 만날 수 있는데 왜 자길 만나냐는 그녀에게 이세상 그누구보다 아름답다고, 뒤에서 빛이난다고..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생각하면 다 풀린다고..

 

그래도 그녀의 불만은 끊이지 않았어요. 너랑 연애하느라 학업이 뒤쳐졌다, 친구들이랑 사이가 예전같지 않다, 너랑 사귀면서 내가 성장한게 없다, 넌 아닌거 같다, 너랑 미래를 꿈꾸고 싶지 않다, 너를 위해 쓴 시간을 후회한다 등등...아무리 잘해줘도, 갑자기 또 애정을 주다가도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불안한 소리, 조금만 힘들면 헤어지자만 몇달. 잘해주면 '넌 분명히 좋은남편이 될거야' 이런 소리하고 못해주면 친구들이랑 비교하고...누구누구랑은 대화가 잘되는데..다른 커플은 이런데...어쩌다 또 싸우기라도 하면 그날 풀어줘도 항상 2~3일 후 후폭풍이 왔어요.

 

결국엔 이별을 통보받고, 이번엔 진짜구나 웃으며 고맙다고, 신사적으로 보내줬어요. 몇일 후 못 참아서 통화해도 되냐고 했더니 지금 바로 하라고, 도서관에서 받더라구요. 세상 쌀쌀맞았어요. 사실 처음부터 하면 안됬는데 본인의 판단실수로 사귄거고, 이별통보하고 그날 밤은 힘들었는데 그 다음날 부터는 너무 편했다고. 너무 멀쩡하고 당당해서 친구들은 본인이 연기한다고 생각하는데 진짜로 나를 위해 슬퍼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나 때문에 예전 썸남이랑 친구로 잘지내다가 멀어졌는데 걔랑 다시 해보고싶다고 까지 하더군요. 저랑 통화하다가 중간중간에 멈추고 본인 친구랑 웃으며 수다를 떨면서요. 시험공부도 있고 과제도 있고, 저랑 연애한다고 멀어진 친구들에게 사과도 해야되고 바쁘다네요. 

 

일주일 후에 저랑 헤어진 이유에 대해 편지가 왔어요. 사실 처음부터 외로워서 사귄건데 의외로 애가 착하고 매력적이여서 사겼다. 그런데 롱디에 연애어플에서 사귄걸 친구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나에 대해 계속 자랑을 했었어야 됬다는 점, 본인 아버지가 절 보고 시큰둥했던점, 연애초반에 했던 제 실수들, 등등 본인은 항상 제가 좋으면서도 확신이 안섰다고. 이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였다고. 한번도 나에게선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못느꼈다고. 본인이 원하는 사랑은 노력으로 얻는게 아니라고. 편안하고 물처럼 흐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삶을 살아갈 영감을 주는 사랑을 원하는데 난 그걸 못줬다고. 처음 나한테 사랑한다고 한것도 본인이 말실수해서 내 기분 풀어주려고 한거고, 첫 관계도 별로 안내켰었고 내가 징징거려서 한거라고. 사귈 때부터 헤어질때까지 매달 제가 뭘 잘못했고 본인이 뭐가 불만이였는지 적혀있더군요. 

 

사실 연애 하면서도 가끔 들었던 것들이라 새로운 건 없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달마다 정리가 되어있으니 읽을수록 숨이 막혀오더라구요. 그나마 서로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달도 빠짐없이...한장에 몇개월씩 7장 짜리였는데 몇 번읽지도 않고 다 외워지더라구요...그래도 대부분 맞는말들이라 죄책감도 들고, 그냥 부족한 제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연애 초반엔 잘해주던 그녀가 이렇게 변한게 저 때문이라고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주변 친구들이 가끔 걱정했었어요. 그때마다 저는 여친을 변호했죠. 속은 착하다. 그래도 이만한 애 없다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거라고.

 

도대체 사랑이 뭔가요? 해주고 싶을 때 해주고, 이해하고 싶으니까 이해하고, 노력하고 싶으니까 노력하고, 돈, 시간, 감정, 안 아까우니까 썼는데, 그 댓가가 이런건가요? 걔가 그러더군요. 제가 자꾸 용서하고 이해해주니까 본인 인성이 더 나빠지는게 내 탓이래요. 나에 대한 존중이 떨어지고 매력도 떨어진데요. 제가 뭘 잘 못 알고 있는건가요? 제 그릇이 작아서, 당연한 걸 하고도 힘들어 한건가요?

 

저도 완벽한건 아니였어요. 첫연애라 서툰 것도 있었고, 말실수도 했었고, 가끔 소홀한적도 있어요. 그래도 미국 10등안에 드는 대학인데, 엄청 천재도 아니고 엄청 성실한 것도 아니라 걔네들한테 얻어터지고, 의대준비하는 공대생이라 할것도 많고 빡세고 여러가지로 스트레스 받았어요. 바빠서 연락 잘 못한적도 있고, 힘들어서 기대고도 싶었고, 어리광도 좀 부렸어요. 이해받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방문와서 못만난다, 교수님이랑 봐야되서 못만난다, 계속 못만난다는 소리 다 이해했지만, 한달전부터 제가 거의 노래를 부르다싶이 봄방학엔 같이 지내자라고 했는데, 본인주최로 친구들이랑 2박3일 등산가기로 해서 늦게온다 했을땐 한번이라도 그 사람에게 1순위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섭섭한 감정이 터지기도 했어요. 저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그렇게 잘못한건가요?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나요. 회사에서 일하다가, 밥먹다가, 자려다가 걔가 했던 말들과 경멸하듯 절 바라보던 눈빛의 기억들이 예고없이 가슴에 푹푹 날아와 눈물이 나요. 야속하게도 그녀가 보낸 편지 마지막에는 절대로 사랑하는 걸 두려워말라고, 제가 제일 잘하는 거라고, 제 인연은 복받은거라고 적혀있더군요. 몇년 전만해도 그토록 하고 싶어했던 사랑이 이젠 다시는 하기 싫습니다. 정말 정말 다시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네요. 

 

미국 남자 친구들은 한국만큼 감성적이지 않아서 말하기도 좀그렇고, 여사친들은 철벽친다고 다 밀어내서...인터넷에 글 올려서 하소연하게 되었네요 ㅠ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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