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는 20대 후반 여자예요.
 솔직히... 그간 살면서 제가 먼저 어떤 남자에게 꽃혀서 좋아해본적이 없어요.
 늘 제가 가만히 있으면 제가 좋다며 먼저 다가오고... 그렇게 해서 남자를 사귀어왔구요.
 딱히 미인인것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이에 비해 조금 동안이라는 소리는 듣지만... 여튼 그리 미인형은 아니에요.
 제 친구들이 말하기로는, 제가 남들 말을 잘 들어주고 낯가림 같은게 별로 없다보니
 남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편하고 그러면서 저한테 호감이 드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사실 그것 외에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암튼... 그렇게 만나왔던 남자가 20대 들어서면서부터 10명 남짓 쯤 되네요.
 순수하게 사귀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남자가 그 정도고... 스쳐 지나간 남자들까지 합치면 15명쯤?
 그리고 양다리 걸친 적 없어요. 저는 뻘짓하면 행동에 다 나오거든요.
 그리고 바람을 피울 만큼 간이 크지도 못하고 그렇게 애써가며 바람 피우고 싶지도 않구요.
 전 10대 때에는 남자 경험이 전무하고 21살때부터 남친을 사귀었어요.
 그러니... 1년에 1명씩은 꼭 만나고 다녔다는 소리네요.


 처음에는 저도 순진해서 누가 나 좋다고 그러니 마냥 좋아하고 그랬어요.
 위에도 썼다시피, 저는 천성이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낯가림도 별로 없고 말을 잘하거든요.
 대학 입학해서 과 선배가 제가 좋다고 대시를 했는데, 튕기지도 않고 단번에 오케이했었죠.
 둘이 정확히 딱 1년 사귀고 1년째 되던 날에 헤어졌는데, 헤어진 이유도 그 남자 때문이었어요.
 제가 이젠 여자로 안 보이고 여동생으로 보인다더군요. 1주년 되던 날에 저러는 바람에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선게 마지막...


 암튼... 뭐 그 이후로 짧게 2달 정도, 100일 정도... 늘 100일 안에서 모두가 다 끝나더라구요.
 어쩔 때는 제가 먼저, 어쩔 때는 그쪽이 먼저... 뭔가 안 맞았던거죠.
 생각해보면 서로 마음이 급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뭐 그러면서 20대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대학 졸업하고 사회 생활 시작하면서... 아, 사람이란 정말 믿을게 못되는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 점점 저도 약아지기 시작했죠.
 사람 감정 가지고 저울질도 할 줄 알게 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요령도 터득했구요.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속으로는 갈구는 이중적인 면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인간이라는 생물에게 드는 회의감, 혹은 불신감.....
 점점 아무도 믿지 못하겠고 다들 그렇고 그런 속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끊어낸 인간관계도 꽤 많아요.
 상처도 많이 줬구요... 그런데 신기한건,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아요.
 그건 지금도 그래요. 남에게 몹쓸 소리 잘하는데 속으로 양심이 찔려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이전 같았음 그냥 참고 넘겼을 일도 이젠 못 참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그러죠.
 다들 저더러 너무 성격 팍팍해졌다고 그러긴 해요. 그건 저도 인정...


 암튼 그러면서 동갑내기 남자를 만났는데, 저와는 다르게 참 구김살 없는 놈이었죠.
 저와는 다르게 여자랑 사귄것도 제가 처음이었고...
 만나면서 회사에서 쌓인 불신감을 그 애를 통해 보상받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2년 넘게 만났었는데, 유학 가더니 거기에서 무슨 일을 겪은건지
 제가 보기에는 다른 여자를 만난 것 같긴 하지만, 암튼 2주 넘게 연락을 끊어놓고는
 나중에 겨우 연락이 닿으니 오히려 말도 안 되게 저를 스토커 취급하면서 헤어지자더군요.
 
 
 사회 생활 하면서 얻은 것이라고는 냉정하게 인간 관계 잘라내는 법,
 최대한 상처 덜 받는 법... 요런 것들 뿐이라 그런지
 2년 넘게 사랑한다 속삭였던 사람인데도 마지막에는 정말 매정하게 한 큐에 잘라내버렸네요.
 웃긴게, 이별의 후유증 뭐 이런 것도 하나 없었어요.
 헤어지던 날 밤 마지막 통화하고 기분 더러워져서 그 애 어머니에게 헤어졌다 통보하고
 그 날 밤도 잠 잘 잤고 다음날 출근도 잘 했고 밥도 잘 먹었고
 심지어는 점심 먹으면서 회사 사람들에게 태연히 '나 헤어졌다'고 말하니
 오히려 주변에서 너무 멀쩡한 저를 보며 괜찮은거냐 당황스러워 할 정도.....


 정말로 그 애를 사랑한걸까? 라고 묻는다면,
 정말로 사랑한 건 맞는데 말이죠.
 그런데 헤어진 그 이후부터는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아마 죽이기 직전까지 신나게 패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요.


 우스운건, 그러고도 두달도 채 지나기 전에
 또 다른 새로운 사람이 제게 다가왔고, 사귀게 되었죠.
 이번 남친 사귀면서 새롭게 알게 된건데, 저는 오는 사람은 거절 안 하는 것 같아요.
 왠만하면, 정말 왠만하면 다 받아주고 그러는데, 한번 제 심기를 거슬리게 하면
 그 때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컷트해버리는... 무서운거죠. 중간이라는게 없는거니까요.


 남친은 이전부터 그냥 알고 지내던 오빠 동생 사이였는데
 헤어지고나서 야근하던 어느날 메신저로 저녁이나 한끼 먹자기에 나갔다가
 지나간 옛 연인 얘기 하면서 필 받고... 그러고 그 뒤로 영화 한편 보고 맥주 한잔 하고
 공원에 바람 쐬러 갔다가 사귀자 그래서... 사귀게 되었네요.


 남들 같았음 '이럴때 고백 받아줘야 하나요?' 라던가, '이 남자가 제게 영화 보여주고 술 사주고
 밥 사주는데 이 남자 제게 관심이 있는걸까요?'라는 식의 고민이라도 한번쯤은 할텐데,
 저는 이미 남자 만나는데에 도가 튼건지 어쩐건지.....
 저녁 먹자고 해서 만났던 그 날, 밥 먹으면서 왠지 이 남자가 나한테 대시할 것만 같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고, 그런데 정말로 내 예감대로 그렇게 된 것이었고...


 혹시 내가 헤프게 행동하나? 싶어서 두번째 만남때에는 일부러 친구까지 대동했었는데,
 친구조차도 너네 정말 한 10년은 알고 지낸 오빠 동생 사이 같다며
 저더러 헤프기는 커녕 너무 편해보여서 둘이 호형호제 해야 할 것 같더라고 그러는데,
 그런데 결국 우리 둘은 사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1년 넘게 사귀고 있다는 것이죠...


 남친은 제게 아주 잘해요. 정말 이런 남자도 있긴 있었구나, 싶을 만큼.
 술도 자주 안 마시고 많이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당구니 도박이니 이런거 전혀 모르고,
 어쩌다가 친구들이랑 컴터 게임 정도 하고 만화책 몇권 빌려보는 정도고,
 그 외에는 오로지 회사, 집, 회사, 집.
 저랑 데이트할적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로 저를 대해주고
 늘 저랑 결혼하고 싶다 노래 부르는 남자.
 저 닮은 딸 낳아 얼른 행복한 가정 꾸리고 싶다는 남자.


 뭐... 이러는데, 문제는 저예요.
 제가 너무 쏘쿨해요. 지나칠 정도로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남친 정말 저한테 저리 잘하는데도 제 마음 한켠에서는
 '맘에 안들면 오늘이라도 헤어져야지'라고 왜 다짐을 하고 있는건지?
 헤어져도 마음이 아플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
 최근에는 7년된 친구랑 절교를 했는데... 그 친구는 마음 아파 하는데
 저는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하네요. 오히려 왜 저 애는 저렇게 마음 아파 할까,
 그만큼 나를 애틋하게 여겼다는걸까? 나는 그렇지 못했는데... 유감스럽네..... 뭐 이런?
 회사에서도 상사가 맘을 아프게 했다고 동료 여직원이 제게 하소연해오면
 저는... 뭘 그런걸 가지고 저러나 싶고.
 그리고 그 상사가 제게 막말을 해대면... 아 그냥 이 사람은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이 들어서
 무덤덤하게 네, 그럴께요, 뭐 이런 식이면 나중에는 그 상사가 오히려 뻘쭘해하면서
 XX씨한테 내가 말이 좀 심했나 싶네... 미안하네, 뭐 이러고.


 남친도 그래요. 남친이 제게 화가 나서 막 따지고 들어도 저는 뭐 미안한것도 아니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응, 미안해, 라고 한마디 말하면
 남친 오히려 말하다 힘빠져서는... '아 니 반응 보니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구나'라면서
 스스로 화를 가라앉히고... 이런 경우가 작년쯤부터 슬슬 많아지더라구요.


 가끔은 내가 너무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사나? 싶지만
 억누르는 기분보다는 그냥... 감정 자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화나고 울고 웃고 짜증내고 뭐 이런거... 즐겁고..... 뭐 그런것도 그다지 없고.
 특히 짜증이 난다는 감정은 얼마전 여름 더운 한낮에 땀을 비오듯이 흘려서
 옷이 축축해져 기분이 좀 그렇네, 정도 외에는 사람 관계에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정말 언제적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얘기 가족이나 친구한테 해봐야 별 도움도 안 될 것 같고,
 남친한테 해봐야 그럼 자기 사랑하는 감정도 없는거냐고 따지고 들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여기다가 두서없이 주절주절 적어봐요.


 참고로 여기 이지에 와서 다른 분들 글 읽다보니 느낀건데
 여기에 글 올리시는 여자분들을 보니 갑자기 제 남친이 생각나네요...
 남친은 저한테 자주 그러거든요. 너는 왠지 밀고 당기기의 고수 같아, 라고.
 자기 감정이 시들거나 잠잠해지지 않게 계속 자기를 밀었다 당겼다 한다고
 한시도 자기 감정을 안정시킬수가 없다고,
 언제 제가 도망갈지 몰라 불안해서 빨리 저랑 결혼해야겠다고 그러거든요.


 제가 해탈한건지, 아님 그냥 쏘쿨한 성격인건지,
 아님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라도 있는건지
 조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