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막에서 벌거벗은 자아를 만나고 옵니다

사람들은 저를 ‘직장인 모험가’라고 부릅니다.
‘직장인’이면서 ‘모험가’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나요?
‘글쎄…’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언뜻 보기에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니까요.
제가 모험을 하러 가는 곳은 주로 사막과 오지입니다. 타들어 간다거나 살을 녹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감정을 얹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표현했다 싶어지죠.

또 사막 하면 실과 바늘을 연결지어 생각하듯 낙타가 있는 고독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떠올리지만,
이곳에서는 낙타보다 전갈 만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사하라사막의 광풍인 할라스가 느닷없이 불어대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고요.

그런 곳에 대체 왜 가느냐고요? 달리러 갑니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달리러요
11년째 세계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횡단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제가 엄청난 체력을 가진 남자인 줄 압니다.
그러다 막상 저를 만나보면 너무나 평범한 외모와 얌전하기 그지없는 인상에 놀라는 분들이 많지요.
제 직장은 서울 강북구청이고, 도시계획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선을 넘나드는 오지 모험가와 공무원이라는 이미지가 얼른 합쳐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도 꽤 열심히 하는 공무원입니다.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청백봉사상’도 탔으니 근거 없는 자랑은 아닙니다.
게다가 아내 눈치도 많이 보지요.
이 말을 하는 건, 제가 원래부터 모험가 기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처음 사막을 횡단한 것은 마흔 즈음이었습니다.
남자 나이 마흔은 심상치 않은 시기입니다. 저는 고위직에 오른 것도 아니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아무것도 부러운 게 없습니다. 10년 이상 거침없이 사막을 달렸으니까요.
사람들은 왜 적지 않은 경비에 위험까지 무릅쓰며 그 고생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제게 묻듯이 저도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왜 나는 사막에 가는 걸까?’라고요. 어쩌면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일 것입니다. 제가 지금껏 도전을 계속해온 사막과 오지에서의 레이스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입니다. 독하디독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시각장애인과 나를 끈으로 연결하고 그의 눈이 되어 달리는 경험도 했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뛰어넘는 궁극의 도전입니다. 그래서 저의 목표는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극한에서 저는 서울의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내 영혼을 봅니다.
내 영혼이 눈에 보이면 그 안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녀오고 나면 또 다른 사막과 오지를 찾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탈출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도피라고 깎아내려도 상관없습니다.

10년 넘게 사막과 오지를 넘나들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곳에 갈 때마다 아내 눈치를 살피는 소심한 남편입니다.
그렇지만 사막의 모래폭풍을 가르며 뛸 때의 저는 절대로 소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던져지면 소심했던 제 모습은 사라지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 중의 남자가 됩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위에 당당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 먹여 살리는 일 말고는 내 인생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저처럼 한번 저질러보세요.
학업 때문에, 취업 때문에, 가족의 생계 때문에 뒤로 밀어두었던 일들, 애써 외면해야 했던 일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굳이 저처럼 사막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보고 싶은 열망’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앞만 보고 살아가길 요구합니다. ‘나는 그러기 싫다.’고 한다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십중팔구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한때 들었던 ‘미쳤다’는 말이 즐겁게 기억될 만큼, 후회 없는 인생이 펼쳐진다는 걸 말입니다.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김경수> 저

명진출판, 2013년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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