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문학동네

2009

☆ :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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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한참인데 이제야 리뷰를 쓴다. 사실 그동안 읽은 책의 십분의 일도 리뷰를 쓰지 않았다. 발췌할 글이 없는 여유있는 오늘, 오늘은 좀 한 편이라도 쓰고 자자라는 마음으로 머릿 속을 헤아리다가 오래된 책이 되어버린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를 꺼내본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지인이 문자로 이랬다. '결말 완전 초초초 황당'. 리얼리? 정말 그런거니? 라며 질질 거리며 유지의 행방을 쫓았다. 책의 말미에 나와있는 유지의 행방을 알고나선 '결말 조금은 황당'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정이현 작가의 연재소설이었던 <너는 모른다>는 미스테리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에 기대기엔 미스테리적 요소가 약한 편이다. 미스테리라는 요소에 집착했던 나는 유지의 실종이 가족들의 소행이라 추측하며 책을 읽었지만, 조금 읽다보면 책은 친절하게도 유지의 실종이 가족들과는 무관한 것임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흡인력이 있다. 책 읽을 시간만 충분하다면 앉은자리에 뚝딱할 만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혼 전력이 있는 김상호는 옥영이라는 화교와 결혼을 해서 유지라는 딸을 얻는다. 김상호에게는 전처 소생의 은성과 혜성이 있다. 그리고 옥영에게는 오랜 벗이자 애인 밍이라는 친구가 있고, 유지는 김상호의 딸이 아니라 밍의 딸일지도 모른다. 말수가 유난히 없고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는 유지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유지에게 친구는 없다. 엄마가 중국인, 세컨드라는 걸 유지의 친구가 될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호는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한다. 유지를 얻으면서 풀리기 시작한 사업은 소위 말해 '중산층'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유지가 사라진다.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런데 가족들 모두가 이상하다. 옥영은 밍을 만나러 친정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대만으로 간 상황이었고, 사업상 뒤가 깨끗하지 못하는 김상호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아이를 돌보기로 한 약속을 깬 혜성은 혼란에 빠지고, 새가족과 사이가 몹시 안좋았던 은성은 혹시 옛날 주절거렸던 자기 아빠의 아이를 납치해서 돈을 뜯어내자고 했던 계획을 전남자 친구가 행동에 옮긴 건 아닌지 불안해한다.

이 소설에서 재미를 주는 요인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에서 빚어지는 긴박한 긴장상태이고, 우리에게 환기시켜주는 화두는 장기밀매이다. 김상호가 무역업이라는 허울을 둘러쓰고 실제로 사고파는 품목이 '심장'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모 다큐에서 동남아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는 장기거래에 대해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린 아이의 몸통에 깊고 선명하고 크게 남겨진 사선의 칼자국은 그 아이의 몸의 일부를 팔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장기밀매가 사형수들은 물론이고 생계가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소설도 보여준다.

중국의 한 자녀 출산 정책으로 호적에 오르지 못한 흑해자를 대상으로, 생계가 어려운 빈민들을 대상으로, 일찍부터 주된 공급자들이었던 사형수를 대상으로, 그리고 요즘의 탈북자나 꽃제비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돈을 받고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파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심장과 즉 생명을 파는 일이 횡행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가 실종된 상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심리상태와 상황을 좇아가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부를 축적한 집안이 이같은 벌을 받는 건 인과응보가 아니겠냐고, 이 이야기는 새드엔딩이 되겠다구나 생각했었더랬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유지라는 아이가 무슨 죄가 있는가 하면서 결론에 대한 생각은 혼란에 빠진다. 도대체 유지는 어디 있는 것일까,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증이 증폭된다.

이러한 궁금증이 주는 조급함 때문인지 몰라도, 사실 이 책의 분량이 너무 길지 않았나 싶었다. 아니 사실 이야기의 가속이 조금 아쉬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거의 500여쪽에 달하는 이야기가 버겨웠다. 이건 마치 실종된 아이를 기다리는 가족의 견딜 수 없는 지루한 고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좀 이야기하고, 그러니까 유지는 결국 어디있는 거냐는 심정의 것이다. 마지막 유지의 행방과 어찌된 일인지 알았을 때,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 것이어서 살짝 황당했다. 빗나간 예상이 주는 허탈감일 게다.

정이현 작가의 변신은 확실히 이 소설로 입증된다. 좀더 단단해진 캐릭터들과 밀도있는 문장이 좋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그들의 목소리로 들렸다. 스산한 이야기가 달갑게 읽어지긴 무리겠지만, 소설이 주는 재미만은 충분한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