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이승우

이룸

2009

★ : 8.0

* * *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가 부재된 채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독자가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과거 이야기, 새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그런 아버지 곁에 나타난 자신이라는 존재 등으로 엮을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티비를 통해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다. 대충은 이러지 않을까.

야망을 위해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택했던 남자, 잊혀진 아들이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인한 후폭풍. 여기엔 고함 소리나 절규도 빠져서는 안된다. 아버지 왜 날 버리셨나요? 엄마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던가요? 따위에 대사말이다.

아마 다른 작가라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을지도 모르겠다. 십중팔구는 아마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아버지와의 화해 또는 파멸을 그려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승우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승우 작가는 철저하게 관념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작가이다. 이때문에 때로는 독자들에게 어렵고 무겁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묵직한 이승우 작가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낮의 시선>에 실린 근원적 의미에서 '아버지 찾기'에 동행할 것이다.

160여 페이지라는 장편이라고 붙이기 조금 서운한 페이지 수에 '나'라는 등장인물은 불현듯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서른 가까운 삶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인식조차 해보지 못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등장이 꿈을 통해 이뤄졌고, 아버지의 부재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부정(不定)'을 스스로 해왔음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찾는 자, 찾도록 운명 지어진 자가 아들이다' 라는 구절을 통해 이것이 필연적임을 명시한다.

소설은 아버지가 왜 아들을 버렸는가 혹은 아버지의 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러면서 아들이 꾸는 꿈과 신화적 요소, 다른 책들의 이야기와 맞물려가며 전개된다. 원형질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버지를 초자아로 해석하는 이야기는 분명 재미없다. 느리고 지루한 문장들이 연이어 있는 이 책은 그러나, 촘촘하다. 다른 소설가들이 소설 속 캐릭터 창조에 열을 올린다면 이승우 작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어려운 길을 또 다시 걷는 것이다.

담고 있는 이야기는 아버지 찾기지만,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버지 초월하기'가 아닐런지. 다시금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