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에 당첨되서 CGV 영화예매권 2장이 생겼다.

같이 영화를 보러 다니는 친구와 함께 가려고 했는데 둘의 시간이 안 맞는 것이었다.

누구랑 볼까? 하고 고민하는 중에

조간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남편과 함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기획도 희비극 요소를 모두 담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에서 시작됐고,

2010년쯤 현대사를 관통하는 아버지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영화보다 영화같은 현대사

관객 울린 부모세대 '피와 땀'

덕수의 인생 경로가 퍼즐 맞추듯 우리 현대사와 맞춰져 나갔다.

서독 탄광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베트남 파병과 중동 건설 현장 취업등

가능한 소재들 중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골라냈다.

굴곡진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을 가감없이 비추는 '사실의 힘'이다."

이 기사를 보고 남편을 돌아보았다.

토목과를 졸업하고,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영동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는 남편.

전세살이하는 시부모와 지방 현장에서 월세로 신혼을 시작해야했던 우리 부부.

그래서 난 무리하여 남편 명의로 집부터 샀고,

10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아야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남편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2년 계약으로 나갔다.

겨우 빚을 갚았는데 시동생 결혼자금을 마련해야해서 다시 2년....

돌아오니 친정오빠가 앞에 타 간 곗돈을 하나도 붓지 않았다고 희망이었던 곗돈을 못 타는 바람에 다시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다시 안 가겠다고 했는데

여동생들이 줄줄이 결혼하는 바람에 네 번이나 혼수를 해주어야해서 다시 사우디 아라비아로.....

마지막에는 시누남편 보증 서준 바람에 또 거액을 날리고.....

그렇게 울남편은 8년을 사우디 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다시는 외국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건설현장도 그만 두고 전업하려던 남편.

그런데 울남편이 돌아왔을때는 나의 친정오빠가 우리 사는 집에 근저당 설정을 해둔 것이

경매로 넘어갈 지경이 되어서

전두환시절 국제상사가 무너질때 국제그룹에 몸담았던 남편은

그동안의 퇴직금을 받아서 겨우 경매를 모면하여 다시 무일푼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살려고 했지만 지방 건설현장으로 다시 10년을 근무했는데

IMF로 다시 실직.....

몇 달 후 겨우 들어간 감리회사에서 이제까지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건설경기만 나빠지면 몇 년씩 쉬기도 많이 했다.

울남편과 나는 결국 36년 결혼생활동안 떨어져 사는 시간이 같이 산 날보다 훨씬 많았다.

다 합치면 10년이나 같이 살았을까?

지금도 주말부부이니......

우리 부부는 오래간만에 영화를 함께 보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남편과 나도 계속 훌쩍 거렸다.

"얘, 울아들이 그 더운 나라에서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데 함부로 쓰면 되겠니?"를

입에 달고 살던 시어머니 말씀 덕분에

정말 백원 한 장도 아끼면서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모두 사치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체면치레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은 꿈도 못 꾸었다.

차림새가 아무러면 어때? 빚지면 누구보다 남편이 고생할텐데 하는 생각을 늘 해야했다.

굴곡진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어낸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울남편이었던 것이었다.

객석에서도 연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오면서 남편은 당시 사우디 현장 이야기를 해줬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문이 열리는 순간 어찌나 더운지 되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지.

너무 더우니까 모래를 마구마구 파서 얼굴을 땅에 파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그래도 직원이라 괜찮았지만 노동자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편은 당시 사우디 현장에서도 많은 사고로 사람들이 죽기도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첫 출국때 온가족이 배웅을 나가 김포공항이 떠나는 사람보다 가족들로 붐볐고,

마중 갔을때도 우리 집도 시아버님을 비롯하여 형제들까지 모두 나갔던 일도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덕수 아내처럼 가지말라고 울면서 하소연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남편 덕분에 정부에서 주관한 해외근로자 가족 산업시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경주 포항 부산을 돌면서 2박3일 여행하다가

어느 저녁 만찬 자리에서

동승했던 200명의 해외근로자 아내들중 한 사람이 갑작스레 마이크를 잡고 나서더니

현철의 노래 "앉으나서나 당신 생각"을 선창하는 것이었는데

식사하다가 모두 합창을 했던 기억도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탄광 면접 시험에 쌀 가마를 어깨위로 올리는 것을 시험보는 장면을 보면서

결혼초에 같이 살던 이종사촌 시동생이

내가 아이들을 낳는 바람에 집이 좁아지자 사우디현장을 지원해서 시험보고 와서는

"손을 내밀어보라는 거에요. 앞뒤로 뒤집어보라고 하더니 손이 거칠고 막노동 한 손이니까 그냥 합격시키더라니까요."

하면서 좋아했던 이종사촌 시동생이 떠올랐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와 막노동을 하다가 사우디를 갔고,

사우디에서 번 돈으로 고향 경북 의성에 사과 과수원도 사고, 결혼도 하였다.

이산가족찾기 현장도 새삼 떠올랐다.

매일 매일 테레비만 보던 엄마가 신기해서 물었더니

"혹시 아니? 너희 외삼촌들이 내려와서 날 찾을지....."

친정아버지가 일제때 시청공무원인 바람에 이북 고향에서는 인척들이 모두 총살당하였다고 하였는데

엄마는 열심히 테레비 시청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였지만....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 모시고 여의도 광장을 가볼걸....

그러나 그때가 1983년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 우리 애들이 어리고,

울엄마는 손주 둘을 보고 계셨으니 꿈도 못 꾸었다.

지나온 세월이 갑자기 머릿속을 휘저으며 온갖 생각을 떠올리게 하였고,

울남편도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딸에게 이 생각들을 적어보냈다.

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러게 나도 가끔 아빠가 참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구나 싶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