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술자리가 잦은 연말은 반갑기도 하지만 몸은 힘든 시기입니다.

제 경우에도 못먹던 술이 그나마 늘었지만 날이 추울 때는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과거 만취해 길에서 잤던 기억 탓도 있고 늘 조심하지만 가끔 해롱대고 술자리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도 이젠 싫습니다. 그래서 저는 1차만 먹고 달아나기 일쑤입니다.

이번 주는 계속 술입니다. 화요일은 옛날 같이 근무했던 선배님들을 모시고 송년회를 했는데 그날도 2차, 맥주를 한 잔 더 하자는 걸 감기로 힘들다고 변명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젊은 놈이 약해 어쩌겠냐는 소릴 들어 마땅합니다.

(그래도 제가 처음 입사해 그분들과 근무 할 당시에는 주량이 소주 반 병도 안되었습니다. 지금은 세파에 시달려 2병까지는 겨우 먹습니다.)

수요일은 사무실 직원들 전체 회식이 있었는데 처음에 너무 달렸는지 나중에는 취해서 계속 졸았습니다. 그 자리가 파하고 모두 일어서는 시간에 제일 먼저 나와 도망질을 했습니다. 워낙 날이 추웠던 탓에 제가 없어진 걸 보고 직원들이 혹여 길에 자다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되어 전화들을 해주었습니다.

목요일, 어제는 24년 전에 같이 첫 직장에 입사해 근무했던 옛 회사 동기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33명이 처음 입사했는데, 임원인 친구도 있지만 지금은 저처럼 그곳을 떠난 사람이 더 많습니다. 업무상 바쁜 친구들과 지방 친구들은 참석을 못하고 10명이 모여 송년회를 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같이 했지만 좋은 사람들입니다. 신촌에 있는 무한리필 일식집이었는데 조용하긴 했지만 좁은 방에서 담배까지 피워대는 탓에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이해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늘 그렇듯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제법 술을 많이 마셨고 2차를 가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2차는 항상 도망질을 한다는 걸 아는 탓에 먼저 나온 두 명의 동기들도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입니다. 나오자마자 저를 붙잡고 집에 가야 된다는 저를 놓지 않고 2차를 가자고 붙잡아 할 수 없이 끌려가는데 두 사람이 2차 장소로 들어가는 틈을 봐 저는 계속 내빼려고 앞으로 걷었습니다. 골목이 길어 걸릴 것 같아 잔머리를 굴려 일단 근처 옆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내빼려고 틈을 보고 있는데 한 친구가 따라와 제가 화장실을 찾는다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화장실이 2차 갈 술집 안에 있다고 같이 가자며 저를 붙잡습니다.

에고...이 마귀야 ㅎ

결국 다시 끌려 2차 장소로 들어갈 판이었는데 뒤에 와야 할 나머지 7명이 보이질 않아 제가 데리러 간다고 말을 하고 발길을 왔던 길로 돌렸습니다.

나머지 친구들이 멀리 보였습니다. 그들을 만나 내가 2차 장소를 아니 같이 가자고  하면서 저는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걸음을 뺐습니다. 그들이 대부분 앞서 가고 마지막엔 제 옆에 한 친구가 남았는데 담배를 사려는지 마트로 들어가는 찰나 저는 옆 골목으로 내뺐습니다.

에휴 동기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술을 더 먹기도 겁나고 지친 몸으로 시간을 견디기도 힘들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ㅋㅋㅋ

길가에 호두과자와 땅콩과자를 파는 리어카가 보여 식구들을 위해 두 봉지 샀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맛나게 보였습니다. 아이들도 아닌데 제가 술을 먹고 가면 뭔가 맛난 걸 사오지 않았냐고 물어 대는 가족들 때문에 샀네요.

전철을 타니 귀가 간질간질합니다. 아마 제 욕을 엄청 하는 모양입니다. 한 친구가 걱정이 되는지 전화를 했습니다. 잘 가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어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 게 큰 복입니다.

자주 더 좋은 자리를 만들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