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3시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더니

 화장실에 갔다가 설사가 시작되었다.

 전날 여고동창 모임에서 송년회를 하였고,

 송년회를 위해 대구와 부산에서 올라온 두 친구를 위해 10명이 서울역에 배웅갔다가

 서울역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게 잘못된건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한 설사는 계속 되었지만 집에 비상약으로 구비한 설사약을 먹었고,

 사우나에서 목욕을 한 후 점심때쯤 집으로 돌아왔는데

 계속 설사중이었다

 참지 못할 정도로 하는 건 아니어서

 상비약 지사제를 다시 한 봉 먹었는데

 오후가 되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있을 나문답 송년회에도 참석해야하지만

 일요일 새벽 북해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고 수액까지 맞았다.

그랬는데 어째 어제보다 더 심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어제보다 더 심한 거 같아요. 오늘은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프고요. 그리고 토할 것 같으면서 토하지도 않고....."

 내가 다니는 집앞의 내과 병원은 많은 사람들로 늘 붐빈다.

 세 사람의 의사가 있는데 모두 젊은이다.

 40대로 보이는....

 내 담당의사는 깡마른 몸집에 안경을 쓴 모습이 공부를 어지간히 좋아했을 것 같은 인상이긴 하다.

 우선 내 귀에 체온계를 대고 체온을 재보더니

 "열은 없네요." 한다.

 어제도 그랬다.

 그리곤 형식적으로 청진기를 대보긴 하는데 어제도 그랬지만 그냥 배위에만 한 번 대어볼 뿐이다....

 "우선 약을 다시 드릴게요. 3일치로....."

 그래서 내가

 "그럼 어제 3일치 약을 받은 건 어떡하죠?"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그건 그냥 버리나요?"

 했더니

 "그래야겠죠."

 한다.

 "이건 제 의견인데 그렇게 약을 버리는 건 국가적 낭비 아닐까요?"

 "그럼 어떻하겠어요?"

 하고 되묻는다.

 "아니, 어제와 같은 약도 들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거기서 뺄 건 빼고, 넣을 것만 넣어서 조제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냥 새 약을 버리는 건 국가적 낭비잖아요. 돈이 아깝다기보다..."

 했더니

 "그럼 타이레놀만 추가하면 됩니다."

 한다.

 아, 이 의사,......

"그리고요. 제가 어제도 말했지만 내일 새벽에 북해도 여행 갈거라고 했잖아요. 너무 아픈데 이러고 가도 되겠습니까?"

 했더니 말끄러미 나를 건너다본다.

 마치 그걸 왜 내게 묻느냐는 표정이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왜 내게 묻는거야?

 하는 듯이

 만약 그가 의사라면 적어도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가셔서 더 아프시기라도 하면 큰 걱정이니 취소하시는게 좋을 거 같아요."

 라고.....

취소 수수료를 자기더러 내라고 하면 큰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일까?

 난 잠시 침묵을 일관하는 의사가 답답했다.

 "아무래도 안 가는게 낫겠죠?"

 했더니 안색이 달라진다. 비로소 밝아진다.

 의사의 소명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환자를 먼저 생각해주는......

"그런데 어제보다 너무 심해서 도저히 안되겠어요. 수액을 오늘도 맞으면 안되나요?"

 했더니

 "맞아도 되죠. 그런데 너무 비싸다면서요."

 한다. 내가 그 소리를 하긴 했다.

 "무슨 수액값이 그렇게 비싸요? 5만 몇천원이라니....."

 그러니까 또 망설이는 것이다.

 권하지도 못하고.... 하긴 어제도 권한 건 아니다. 내가 맞겠다고 했지....

 이 사람 도대체 의사가 맞나?

 환자를 먼저 생각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제 맞고 오늘 또 맞는데 좀 깎아주면 안되나요?"

 했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다.

 "깎아주면 소문나서 너도 나도 깎아달라고 하니 안됩니다."

 하, 참.....

얼마전 남편은 자주 다니던 정형외과에서 무슨 검사를 했는데 원래 가격은 30만원인데 하두 자주 오시니까 십만원만 내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 듣고 울남편 그 병원 그 의사선생님을 아주 아주 존경할만한 의사로 생각한다.

 아마도 종신환자가 될 것이다.

 "아니, 내가 마이크를 대고 동네방네 다니면서 방송하고 다닐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주면 오히려 환자들이 그 의사 참 인간적이더라.... 하며 의사로서의 인성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닌가요?"

 했다.....

 그랬더니 겨우 만원을 깎아준다는 것이었다.

"기왕 인심 쓰시는 거 더 쓰시죠?"

하면서 남편 이야기를 했다.

코드가 있어서 안된다고 하더니 2만원을 깎아주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한데도 소문날까봐 안된다니......

당뇨약을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달에 한 번 가는데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식당에 전화했더니 진료확인서를 떼어 팩스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당뇨약을 받으러도 갈 겸사해서

2주만에 다시 병원에 들려 진료확인서를 부탁했다.

인쇄한 것을 뽑아서 건네주는데

병명이 "상세불명의 위장애증"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병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뭐 다른 말은 없을까요?"

했더니

"식중독이라든가 장염일 경우는 그 당시 대변을 받았다던가 위 내시경 검사를 해서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시기가 다 지났으니....."

진료확인서를 뽑아달라고 했으면 그걸 어디에 쓰려는지도 알 것인데

가만 보면 이 의사는 젊은 사람인데도 인간미가 하나도 없고,

그저 자기 발뺌에만 능하다.

이렇게 세상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결국 식당에서는 증거불출분이라며 진료비 전액 환불은 안되고 일부는 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승복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조선일보 일사일언에서 김재원 아나운서가 쓴 세 가지 용기에 대한 글을 보았다.

그렇구나.

젊은이들은 미움받아도 되는 용기가 부족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사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로구나 하는......

세 가지 용기란

첫째 실수해도 되는 용기

둘째 미움받아도 되는 용기

세째 평범해도 되는 용기

가 청춘에게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 중 두번째 미움 받아도 되는 용기란 

둘째, 미움받아도 되는 용기이다. 청춘은 자신의 원칙도 미움받을까 봐 말하지 못한다. 선배에게, 상사에게, 교수에게 잘못 보여 불이익을 당할까 봐 신념과 가치관을 굽히기도 한다. 인정 욕구에 목마를수록 그 두려움은 더 커진다. 내 주장이 옳으면 미움받아도 되는 용기가 그 두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 의사에게도 그런 용기가 부족한 것이로구나....

김재원 아나운서는

마지막에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가장 미안한 것은 청년들에게 불안한 시대를 물려줬다는 것이다.
로 글을 맺었다.

맞는 말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