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로 방송인으로, 다시 비상할 준비 돼 있다." 주영훈은 뮤지션으로서의 전문성 외에도 타고난 방송감각으로 대중적 존재감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남윤호 기자

300여곡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트로트와 동요곡도 준비 중"

[더팩트｜강일홍 기자] 방송인 주영훈(49)은 300여곡 이상의 대중가요를 작곡한 국내 대표적인 싱어송 라이터다.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94년)로 데뷔한 이후 소방차 엄정화 코요태 터보 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며 50여곡의 빅히트 곡을 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란 사실만으로, 그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는다. 자신의 인기곡들이 '나는 가수다' 이후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등의 음악예능에서 여전히 단골로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영훈은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잊혀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편곡되거나 재해석돼 불려진다는 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작곡가로서보다는 방송 MC로 더 빠르게 상승했다. KBS '뮤직뱅크' MC를 시작으로 SBS '좋은 친구들' MBC '오! 해피데이' 등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지상파 예능을 휩쓸었다. 종편채널 개국 이후엔 JTBC '당신을 구하는 TV, 우리는 형사다' MBN '아궁이' TV조선 '엄마의 봄날' 채널A '아빠본색' 등을 진행했다.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전문성 외에도 타고난 방송감각으로 대중적 존재감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특히 음악 예능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선보이는 '명해설'은 정평이 나 있다. 최근 트로트와 동요에 눈을 돌려 새로운 장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팔방미인' 주영훈을 스페셜인터뷰이로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수많은 히트곡을 가진 작곡가이면서, MC로 진가를 발휘한 방송인이다. 배우를 꿈꾼 아역 출신 연기자였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

청담초등학교 시절 연기를 했어요. 1년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작품에 등장한 걸 보면 저 보다도 어머니의 열정이 더 크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저를 연예인으로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나섰는데 목사이신 아버지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죠. 훗날 신학대에 진학해 목사가 돼주길 바라신 아버지 뜻에 따라 중고등학교(언북중/경기고)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성인이 된 뒤에도 아역 배우 시절 기억은 늘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연예계에 대한 동경 같은 거였죠.

그는 1978년 황순원 원작 영화 '소나기'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영화 '저 파도 위에 보이는 엄마 얼굴이'(임권택 감독)와 드라마 '영이의 일기' 등에 출연했고, '일곱색깔 무지개'에 첫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연예계에 관심이 많던 엄마의 적극적 지지 덕분이다. 하지만 목회자인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활동을 접었다고 한다. 주영훈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어머님의 뜻대로 연예계 진출의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했다.

-아역에서 작곡가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긴 공백이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단호한 반대로 연기활동이 막히니 어린 마음에 답답했죠. 일찌감치 반항심도 생겼고요. 그래도 그땐 부모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하는 게 미덕이었죠. 한편으로는 고분고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상처를 안고 살았던 거죠.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에도 줄곧 그런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88년에 온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저는 적응하지 못하고 4년 만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님께서는 연로하신 지금도 30년 전 그때를 저보다 더 아쉬워하세요.

주영훈은 노던 버지니아 주립 커뮤니티대에 진학해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지만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중퇴를 결행한 뒤 당시 유행중인 팝 등 음악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가족의 품을 떠나 결국 홀로 귀국한다. 이후 그는 독학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데모 테이프로 만들어 당시 유명 스튜디오 등을 찾아다니며 날개를 펼칠 곳을 물색했다. 그는 "처음 1년간은 잠잘 곳도 없어 거의 노숙자 분위기로 살았다"면서 "소방차 심신 등과 만난 게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아역 연기자 출신인 건 모르셨죠?" 주영훈은 초등학교시절 연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남윤호 기자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특별한 계기나 운이 없다면 가요계에 자리매김하기는 쉽지 않다. 태진아와의 인연은 무슨 얘기인가.

사실 이름 없는 작곡자가 유명 음반사에 발탁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죠. 저는 운좋게 당시 유명기획사였던 한밭기획에 발탁이 됐어요. 그 인연으로 제 데뷔곡인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가 처음 세상에 빛을 봤죠. 태진아 선배도 그곳에서 만났고요. 태진아 선배는 그곳에서 노하우를 터득해 진아기획을 설립했고, 당시 전무였던 故 이호연 DSP 회장은 대성기획을 만들어 독립했어요. 훗날 가요계를 좌지우지할 쟁쟁한 분들이 두루 포진돼 있었던거죠.

이런 토대 위에서 출발한 주영훈은 90년대 가요계 흐름을 이끈 주역으로 부상한다. 발표 곡만 무려 300여곡에 달하고, 이중 성진우의 '다 포기하지 마', 임상아의 '뮤지컬',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 '포이즌' '페스티벌' '스칼렛' '다가라', 터보의 '나 어릴적 꿈' '선택' '트위스트킹' '굿바이 에스터데이' '화이트러브', 김현정의 '실루엣' '미라지' '루머스의 스톰', 유채영의 '이모션', 코요태의 '비몽, 디스코왕' '투게더' '아이러브 록앤롤', 슈가의 '샤인', 김종국의 '사랑스러워' 등 히트곡만 50여곡에 이른다.

-요즘 트로트 쪽에서 곡을 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들었다. 원래 발라드와 댄스 장르가 주 영역 아닌가.

맞아요, 제 히트곡의 기반은 발라드죠. 그런데 사실 트로트도 저한테는 낯선 장르가 아니에요. 영화 '복면달호'(이경규 제작)에 등장했던 트로트곡을 모두 제가 썼거든요. 가요계 트렌드는 수시로 바뀌고 있고, 최근 트로트 열기에 힘입어 90년대 유행하던 '뽕발라드'(트로트+발라드)가 서서히 주목을 받는 추세입니다. 저한테도 기성가수를 포함해 신인가수들의 곡 요청이 부쩍 늘었어요. 트로트 수요는 과거에 비해 급속히 증가했고, 그 당시보다 지금이 훨씬 커졌다고 봐야죠.

작곡가로서의 주영훈의 특징은 세련된 전주에 있다.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에서 마치 공포영화처럼 째깍째깍 긴장을 배가시키다 비명으로 시작하는 전주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터보의 '트위스트킹'에서 샘플링과 함께 시작하는 김정남의 뭉툭한 랩, 코요태의 '디스코왕'에서 등장하는 그루비한 랩 등 그의 히트곡은 출발부터 독특하다. 현재 그는 국악 트로트 가수 유지나의 신곡을 준비중이다. 그가 '미스트롯 바람'이 분 이후 장르를 바꿔 과연 어떤 독특한 스타일로 가요팬들 앞에 다가설 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가요계의 90년대 대표 작곡가인 주영훈은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노래를 선곡하다보니 결국 90년대 노래가 많이 불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 같은 음악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곡들은 대부분 80년대, 90년대 노래 뿐인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아이돌 가수들의 곡은 노래보다는 춤과 율동에 주목도가 높아요. 노래를 따라부르고 기억할 틈이 없어요. 그러니 가요계 음원강자로만 존재할 뿐 유행가로 소비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죠. 대중가요, 즉 대다수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노래를 선곡하다보니 결국 90년대 노래가 많이 불릴 수 밖에 없어요. 대신 젊은 감각의 세련된 편곡과 스타일로 재해석돼 불려지는 겁니다. 가수는 바뀌었는데 노래는 20년전 또는 30년전 히트곡들이 소환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인 거죠.

주영훈은 "가요계 환경이 바뀌면서 수혜를 받는 가수도 생겨났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가수로 '나가수' '미스트롯' 등의 음악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황치열 송가인을 꼽았다. 그는 "실력있는 젊은 가수들이 인지도를 먼저 끌어올린 뒤 당당히 스타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라면서 "이젠 자신의 히트곡이 없어도 남의 곡으로 얼마든지 각종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누리는 환경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강단에서 5년째 다양한 공연예술 분야의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방송 연예계에서 쌓은 경험들을 후학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동아방송대를 거쳐 지금은 신한대학에서 음악전공 수업을 5년째 하고 있어요. 전국 실용음악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한류가요제를 4회째 개최하고 있는데 이론과 실무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죠.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몽골 등 아시아권 해외대학 관련학과 학생들의 호응도 뜨겁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델콘테스트나 패션쇼, 태권도축제까지 폭넓은 영역의 한류 확산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요.

유독 안티팬이 많아 힘든 시기를 겪은 주영훈은 "그래도 역시 정답은 가족 사랑"이라며 "어느 순간 내려놓고 기다리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연예계 성공한 아티스트로 평가받지만, 유독 악플이 많은 연예인이기도 하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연예인들은 SNS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잖아요. 더러는 일기장처럼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하고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는 SNS를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어요. 바로 악플 때문입니다. 가족 여행 장면이나 집에서 가족들과 밥먹는 사진만 올려도 악플이 쏟아져요. 그냥 평범한 사진일 뿐인데 자랑하거나 부러움의 대상으로 오해를 하는 것 같아요. 단순 비난을 넘어 욕설까지 댓글로 붙어 아이들한테도 훗날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 가까운 지인들과 소통하는 정도로만 만족하고 있어요.

주영훈은 최근 JTBC2 '악플의 밤'에 출연해 "비호감 이미지를 바꾸고 싶지만 내 마음대로 확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100만 안티'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주영훈은 "내게 100만 안티가 생긴 원인을 안다. 병역면제, 마마보이 캐릭터로 비호감 이미지가 생겼고 악플이 넘쳐나기 시작했다"며 "악플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고 고백했다.

-연예계 소문난 '딸바보'로 알려져 있다. 딸을 위해 작곡한 노래 '딸바보송'이 요즘 돌잔치 인기곡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9년 전 큰딸 돌잔치 때 작곡한 노래인데 돌잔치 영상속 BG 또는 축하송으로 많이 불려요. 애초엔 제 딸을 위해 쓴 곡이었지만 젊은 신혼부부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은 저작권료를 생성하는 인기곡이 된 거죠. 지난 7월 워싱턴 내셔널스타디움에서 류현진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어요. 우선은 류현진한테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지만, 한국만화 브랜드에서 파생된 '핑크퐁'의 주제가(상어가족)를 수만명의 관객들이 합창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죠. 야구장에서의 신선한 충격 때문에 '딸바보송'을 넘어 요즘 새로운 동요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우리 공주님 알고 있나요? 아빠가 매일 뭘 원하는지, 일찍 자구요 일찍 일어나 건강한 아이 돼줘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딸바보송' 가사처럼 주영훈은 오직 세 딸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저녁시간에도 딸들의 잠자리를 보살피고 재우기 위해 반드시 9시 이전 귀가를 생활화하고 있을 정도다. 아침 식사를 챙겨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셋째 딸이 이제 8개월 된 갓난 아이라, 힘든 아내를 대신해 육아를 거들어줘야한다"고 말했다.

연예계 '소문난 잉꼬' 부부. 딸바보 주영훈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흉이 아니다"고 말한다. 사진은 주영훈 이윤미 부부가 8개월 막내딸을 포함한 세 딸과 다정한 포즈. /라인엔터

올해 결혼 13년차 주영훈 이윤미 부부는 연예계 '소문난 잉꼬'다. 12살 연하 띠동갑 부부의 알콩달콩 부부금실 비결은 양보와 배려다. 주영훈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흉이 아니다"고 말한다. 말 한 마디에도 항상 사랑꾼 애처가다운 노력이 깃들어 있다.

'일월이 쌍립(日月雙立)하는 형국이니 광명의 서광이 함께 하고 낮과 밤 상관없이 행운이 늘 지켜준다는 뜻이다. 그 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쫓기던 일들이 사라지고 갖가지 소망을 이루는 명운으로 바뀌니 인기를 재평가 받아 최고의 명탑을 세우는 호운으로 이어진다.'

필자는 몇 해 전 유명 역술가(백운비)에게 의뢰해 이들 부부의 사주궁합을 확인한 적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부부금실이었다. 특히 이윤미의 내연성운이 강해 주영훈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다고 했다. 주영훈은 얼마 전부터 김구라 김국진 박미선 등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소속사를 옮긴 이유는 바로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에서다.

주영훈은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그는 "방송도 준비 중이지만 틈나는 대로 작곡(트로트와 동요)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루 아침에 모든 걸 다 일궈낼 수는 없다. 그는 "어느순간 내려놓고 기다리는 지혜를 터득했다"고 말한다. 달관한듯 여유로운 그의 표정에서 머지않아 악플의 괴롭힘을 벗어나 다시 비상할 것이란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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