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WCA연합회와 젠더정치연구소 등 범여성단체회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세정 인턴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한류 관련 문화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 이사장이 30대 여성을 성추행 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던 중 가해자로 지목된 A씨가 기자에게 한 해명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여성의 얼굴을 성과 연결시킨 해명은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저급스럽고 황당했다. 듣자마자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말하니, A씨의 답변은 더 황당했다. 아직도 후회된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더 강하게 화를 내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여전히 가슴 속에 응어리가 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최근 각종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와 관련된 취재를 하면서 온갖 이야기, 사례를 들었지만, 이때 느낀 수치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해당 내용은 기사에 담을 수도 없었다. 기사를 읽은 피해 여성이 다시 수치심을 느낄까 두려웠다. '내 안에 남아있는 수치심'이 그 여성에게 고스란히 전해질까 걱정됐다.

성폭력의 책임은 늘 피해자에게 지워진다. "그러게 짧은 치마를 왜 입었어?(치마 입으면 만져도 되나요?)", "왜 그때 바로 신고하지 않았니?(상처 받은 피해자는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질책을 받아야 하나요?)",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어야지.(얼마나 더 거절해야 했을까요.)", "조심했어야지.(얼마나, 어떻게 더 조심해야 합니까?)",

'2차 가해'는 큰 것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피해자의 성격이나 행동을 문제 삼거나 외모에 대한 조롱이나 비난을 하는 것도 분명히 2차 가해다. 성추행을 당해도 마땅한 외모는 어디에도 없다.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사진 왼쪽부터 안희정 전 지사, 이윤택, 안태근 전 검사./ 더팩트DB

기사 속 여성은 A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 속에서 "아빠 가게로 찾아가겠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말도 들어야 했다. 또 다른 형태의 2차 가해였다. 이 여성은 "사과를 요구했을 뿐인데 협박을 들었다"고 호소했다.

기자 역시 취재 중 "그 여자와 무슨 관계냐"는 소리마저 들어야 했다. 해당 여성과 통화한 횟수와 A씨와 통화한 횟수는 거의 비슷한데도 말이다. 양측의 말을 듣고, 모든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어떻게 기사를 썼어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A씨의 노여움을 진정시키고, 그의 마음에 들 수 있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물론, 무고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돼서는 안 된다.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남성의 성충동은 억제할 수 없다', '실수일 것'이라는 등 성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발언과 생각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가해자가 남성이 아닌 여성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무고한 가해자는 없다.

시선이 두려워서, 2차 가해에 노출되고 싶지 않아 오늘도 입을 열지 못한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동시에 이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침묵이나 비난, 싸움에 맞서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치마가 얼마나 짧든, 추파를 얼마나 던졌든, 가슴골을 얼마나 드러냈든, 어디에 가고 누구와 함께 있었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하지 않았든, 어떤 반응을 보였든 상관 없어요. 스스로에게 계속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세요."

<조디 래피얼 '강간은 강간이다' 中>

ksh@tf.co.kr

[인기기사]

· [TF포토] 한 자리에 모인 문재인-김영철-이방카

· [TF포토] 축제의 장으로 변한 '평창올림픽 폐회식'

· [TF포토] 이상화-김아랑-김경애, '웃으며 입장하는 빙판 위 여신들'

· [2018 평창 폐회식] 전 세계 하나 된 대축제 '17일간 여정' 대단원

· [TF초점] MB '검찰 소환 임박'에도 한국당은 '여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