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팀 회식 자리에서 술이 스며들어 망가진 휴대전화. 수리비만 40만 원이 든다고 했다. 이참에 휴대전화 없이 버티기에 도전했다. 사흘 뒤 혹시나 하고 전원을 눌렀으나 역시나 기적은 없었다. 할부 값만 7개월 남았다./황신섭 기자

작심삼일(作心三日),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곧 느슨하게 풀어진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새해가 밝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채 삼일을 넘기지 못하거나 아니면 얼마 가지 못해 도전에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더팩트> 정치사회팀 기자들도 새해를 맞아 ‘휴대전화 사용 않기’ ‘금연’ ‘나트륨 줄이기’ 등을 주제로 도전했다. 과연 작심삼일을 넘길 수 있을까. -편집자 주

[더팩트｜황신섭 기자] "이런!"

대참사는 연말 팀 회식 현장에서 일어났다. 폭탄주를 연거푸 들이킨 팀원 중 누군가 광란의 춤을 추다 탁자 위에 올려둔 내 휴대전화에 술을 엎지른 것.

화들짝 놀라 술을 닦아내고 녀석의 심장을 눌렀다. 한번, 두번, 세번.......'제발, 제발'. 그러나 심폐소생술에도 녀석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순백색의 내 휴대전화(아이폰5)는 7개월치 할부 값만 남긴 채 2014년 12월 27일 겨울밤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 이날 난 대리운전도 부르지 못했다.

'40만 원이요?'

이튿날 방문한 수리센터에서 직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 전화를 사기 전 쓰라고 임대폰을 내밀었으나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이렇다.

며칠 전 팀 회의에서 기자가 직접 도전하는 신년 기획 '작심삼일 프로젝트'를 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그 중 하나가 '휴대전화 없는 삶'이었다.

원래 이 도전은 평소 디지털 여신으로 통하는 후배 김아름 기자의 몫이었다. 허나 어쩌랴. 하늘의 뜻인걸.

이참에 내가 하기로 했다. 그 덕에 후배에겐 업무를 덜어준 좋은 선배가 됐다.

◆하루, 휴대전화 없는 나'…로빈슨 크루소'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휴대전화 없는 첫날부터 서랍에 쑤셔 박아 놓은 손목시계와 수첩, 엠피쓰리, 디지털 카메라를 모조리 꺼내야 했다.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이었다./황신섭 기자

12월 29일. 많이 늦었다!

휴대전화 알람에 맞춰 깨던 습관부터 무너졌다. 휴대전화에 내려받은 메신저 앱도 없으니 팀장한테 지각을 알릴 길도 없다.

팀원 전화번호도 기억나질 않는다. 서랍에서 손목시계부터 꺼냈다.

이어 지하철에서 들을 엠피쓰리(MP3)와 일 할 때 쓸 수첩, 디지털 카메라도 챙겼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가방만 묵직하다.

지하철에서도 답답했다. 아침 일과인 이메일·모바일 앱 기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취재원의 연락도 받을 수 없다.

세상을 구경·탐색하는 창이 없으니 바보가 됐다. 무인도에 홀로 남은 로빈슨 크루소가 이런 기분일 테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팀장과 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휴대전화 없이 사흘간 일 하겠다'고 동의를 구한 뒤 컴퓨터를 켰다.

아니나 다를까. '불만'과 '걱정'이 뒤섞인 네이트온 메시지가 화면에 가득했다. 사정을 말했지만 일부 모바일 벗들은 '그게 가능하겠냐'며 되레 핀잔을 줬다.

이날 하루 난 취재 현장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사무실에서 멍하니 컴퓨터만 바라봤다. 퇴근 길 아내에게도 '연락이 안돼 답답하다'는 원망을 들었다.

◆이틀, 아이폰 없는 삶…금폰 증상 심각

휴대전화 없이 버틴 이틀째부터 조금씩 금폰 증상이 왔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신문으로 아침 기사를 챙긴 뒤 공중전화로 업무 보고를 했다. 하지만 또 늦었다. 공중전화 박스를 찾는데만 40분이 걸린 탓이다./황신섭 기자

금폰 증상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휴대전화와 결별한 이틀째 아침. 나는 머리맡의 휴대전화를 집어 올리려다 '아차'했다. 대신 신문을 집어들었다.

아침 뉴스는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회사의 모바일 기사를 볼 수 없어 답답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침 업무 보고였다.

집 근처 공중전화 박스를 찾는데만 40분이 걸렸다. 수화기를 들었으나 이번엔 동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고 50원, 100원짜리 동전 몇개를 챙겼다. 잔돈은 또 어찌나 빨리 떨어지던지, 긴 통화는 불가능했다.

2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가는 출근길이 고비였다.

분명 휴대전화는 없는데 손은 자연스레 점퍼와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한번 보고 발길을 재촉했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오늘 할 일을 떠올렸다. 취재원의 전화번호도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취재원 연락처는 머리를 쥐어짜도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업무에 구멍을 낼 수는 없는 노릇!'

급하게 기사를 전송할 때 사용하는 에그와 노트북을 꺼냈다.

'이건 또 뭔 상황?' 와이파이가 뜨지 않는 구간에서 인터넷을 연결했다. 그런데 휴대전화 테더링이 안됐다.

지하철 전광판 뉴스에 긴급 속보가 뜨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했다.

결국 상사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이래저래 힘들다. 이날도 난 쭉 사무실을 지켰다.

그리고 늦은 밤 결국 휴대전화 매장을 하는 친구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 아이폰 좀 택배로 보내줘요."

◆사흘, 오! 나의 휴대전화…문명 세계로 컴백

금폰 증상을 이기지 못하고 사흘 만에 새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오! 나의 휴대전화. 문명 세계는 그곳에 있었다./황신섭 기자

사흘 만에 휴대전화와 다시 만났다.

오전 10시. 첫 눈처럼 아름다운 아이폰6 상자가 도착했다. 나보다 팀원들이 더 환호했다.

새 전화에 유심 카드를 넣으니 곧바로 문명 세계가 열렸다. 취재 현장의 사진과 수많은 연락처. 간절히 원하던 테더링 서비스까지.

심장이 가쁘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손가락이 먼저 반응한다.

오! 나의 휴대전화여.

정치사회팀의 '작심삼일' 프로젝트를 난 충실히 수행했다. 내 인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입한 거다. 팀장에겐 이렇게 핑계를 댔다.

새 휴대전화를 만지며 기뻐하는 나를 후배 신진환 기자가 바라본다. 신 기자는 오늘부터 두번째 프로젝트 '담배 끊기'에 도전한다.

너는 꼭 성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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