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10시 20여명의 사람들이 서울 영등포구 한 센터에서 운영하는 임종체험관을 찾아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영등포=신진환 기자

[더팩트 ㅣ 영등포=신진환 기자]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죽음은 두렵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새해를 앞두고 힐-다잉(healing-dying·임종 체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힐-다잉은 힐링(healing)과 다잉(dying)을 합한 신조어다. 글자 그대로 '잘 죽는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이 죽음을 경험하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연말, 가족을 떠올리며 삶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더팩트>가 만났다.

◆ 한 해 지친 마음 안고

임종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영정사진./영등포=신진환 기자

12월 셋째 주, 겨우 임종 체험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연말, 송년회 스케줄 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3일 오전 10시. 이른 시각에도 20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 영등포구 한 센터에서 운영하는 임종체험관을 찾았다.

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1월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5000명 이상이 참여했다"면서 "학교나 회사 등에서 단체로 오기도 하고,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어두운 느낌과 달리 센터 안은 의외로 밝은 분위기였다. 죽음을 아직 체감하지 못해서일까.

이날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고민과 사연을 가지고 센터를 찾았다. 40대 여성이 절반 정도였으며 50대 남성과 20대 청년, 남녀 커플도 몇몇 보였다.

40대 여성 이모 씨는 "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단체로 왔다"면서 "색다른 경험을 할 것 같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이라고 기대했다.

혼자 온 사업가 정 모(55) 씨는 "얼마 전 회사가 자금난을 겪어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삶의 전환점을 찾고자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고, 취업준비생 유 모(25·여) 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어제도 서류에서 떨어졌다. 마음을 정리할 겸 왔다"고 털어놨다.

◆ 가족이란 이름으로…

입관을 체험한 뒤 눈물을 훔치는 한 중년 남성(오른쪽)./영등포=신진환 기자

임종 체험은 '영정 사진 촬영-수의 입기-유언서 작성-입관'의 순서로 진행한다. 영정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던 참가자들은 유언서를 쓸 때 비로소 지난 삶을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몇몇 참가자들은 쉽사리 유언장을 작성하지 못했다. 허공을 바라보거나 깊은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한 남성은 힘겹게 펜을 움직이면서 입술 주변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촛불에 비친 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은 살아온 일생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다.

한 사람씩 떨리는 목소리로 유언장을 읽었다. 한 20대 남성은 "평소에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목놓아 울었다. 이 남성이 "엄마, 아빠..."를 부르며 목이 메이자 그 자리에 있던 체험자들도 하나, 둘 고개를 떨궜다.

유언장을 읽은 체험자들은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리며 "먼저 가서 죄송하다"고 고백했다.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았다.

50대 남성은 "죽음을 앞두고 가진 것은 수의 한 벌 뿐"이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가족들과 등지고 살아온 삶을 반성했다.

◆ 새해엔 '잘 살아 봅시다'

참가자들이 모든 체험을 마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영등포=신진환 기자

체험을 마친 참가자들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한 40대 부부는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했다"며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는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 앞으로 두 아들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입관이 끝난 뒤 눈가에 눈물이 맺힌 박모 씨도 "지금까지의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에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말했다.

20대 남성(취업준비생)은 "체험이 짧아서 충분이 몰입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관에 누워 있던 순간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됐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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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팀 tf.pstea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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