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이어온 장수 공익 프로그램 KBS1 '사랑의 리퀘스트'가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설에 휘말렸다. / KBS 제공

[더팩트ㅣ김한나 기자] KBS의 대표 공익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가 폐지설에 휩싸였다. 17년 간 브라운관에 '착한 바람'을 일으키던 프로그램이지만 결국 저조한 시청률이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시청률 지상주의'가 다시 한 번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지난 14일 인터넷 매체 오센은 '사랑의 리퀘스트'가 17년 만에 폐지된다고 보도했다. KBS 측은 즉각 "내년 1월 대개편을 앞두고 폐지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면서 "아직 확정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벌써 '사랑의 리퀘스트' 후속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고 전해지면서 폐지는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지난 1997년 10월 24일 첫 방송 됐다. 전화 한 통화면 2000원이 기부되면서 모금액이 모이는 식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간편한 기부 방법은 물론 부담 없는 기부액 등으로 KBS 대표 공익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사랑의 리퀘스트'는 지난 17년 동안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온기를 제공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가수 백지영이 지난 6월 KBS1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해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쌍둥이의 사연을 본 후 오른 무대에서 떨어지는 눈물로 노래를 잇지 못해 화제를 낳았다. / KBS 방송 화면 캡처

첫 방송을 했던 1997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집계된 모금액만 830여 억 원을 돌파했고, 이 금액으로 결식아동,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희귀질환 환자 등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총 4만 5000여 명이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희망을 얻은 셈이다.

특히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다시 한 번 기부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스타들 역시 안타까운 사연에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 6월 방송분에서 백지영은 생후 4개월 때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후 병을 앓고 있는 쌍둥이의 사연이 전해진 직후 오른 무대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이며 노래를 불렀다. 떨어지는 눈물로 목소리가 힘겹게 떨리며 방송사고를 일으켰지만 이 장면은 '백지영 눈물'이라는 키워드로 온라인을 강타했다.

스타들의 이러한 반응은 나비효과로 팬들의 기부 문화까지 만드는데 일조했다. 오히려 스타 없이 팬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출연해 쌀이나 기부금 등을 전달하는 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걸그룹 등 스타들이 등장한 회차에서 반짝 시청률 상승을 보일 뿐 대부분 2~3%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프로그램은 방송되는 17년 동안 수차례 폐지 위기를 겪었다. 지난 2011년에도 프로그램 관계자는 "높지 않은 시청률 속에서도 모금은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하지만 확실한 공영성에도 불구하고 존폐 여부는 항상 있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이웃들을 소개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물론 기부의 중요성을 각인해 왔다. / KBS 방송 화면 캡처

순기능이 많았던 공익 프로그램이었기에 '사랑의 리퀘스트' 폐지설은 즉각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해당 게시판에는 "폐지라니 어떻게 그럴 수 가 있느냐" "이런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는게 안타깝다. 폐지하면 안된다"는 글이 올라왔고 해당 기사 댓글에도 "공영방송인 KBS가 이러면 되겠느냐"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 하던 상징적 프로그램이었는데 폐지라니 아쉽다" 등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는 KBS의 두루뭉술한 반응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려달라" "폐지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등 가능성을 추측하는 목소리도 상당수다.

그동안 '착한' 프로그램들은 공익적인 순기능에도 고질적인 시청률 문제로 브라운관에서 사라지는 수순을 밟아 왔다. 시청률에 따라 광고를 수입 원천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리퀘스트'는 17년 간 시청률과는 별개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상징적인 프로그램이다. '착한'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족쇄를 풀고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어갈 때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 함께 이어진다는 것을 KBS는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때다. 더구나 KBS는 국민들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란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

hann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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