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센스_ 복직하기까지 대부분 육아 휴직 기간이 짧더라.
김주하_ 참 짧디짧은 기간이다. 그 기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김주하는 휴직하는 동안 애도 잘 키웠고, 여자로서의 메이킹에도 성공했고, 다시 일터로 컴백도 했다고 하는 거지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결국 무얼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병행하긴 힘들다. 아주 간단한 예로 살을 빼는 문제만 놓고 봐도 “애를 낳고 3개월 안에 빼지 않으면 빠지지 않는다”는 등의 말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을 하면 모유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몸을 추스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쉬는 기간조차 여자들은 머리가 아프다.
리빙센스_ 딜레마다. 워킹맘은 은퇴냐 복귀냐를 고민하기에 앞서 그 짧은 기간에도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인가?
김주하_ 그렇다. 아이로 인해 여자들은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균형이 깨진다고 말하면 될까? 항상 일과 육아라는 중간도 아닌,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고민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현실에서 한쪽에 치우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리빙센스_ 그렇다면 아이를 낳기 전 워킹맘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김주하_ 아이를 낳으면 전후의 세상이 판연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기 전에 자신의 일과 경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온전히 엄마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시간을 쪼개서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또 일에 전념할 시간이 온다 해도 그건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이후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 전에 자신의 일에 후회 없이 전념하라고 권하고 싶다.
리빙센스_ 30대 워킹맘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 친정도, 시댁도, 사회적으로도 기댈 곳이 없다.
김주하_ 예전에 미국 교육부에서 연구 대상 가족으로 뽑은 전혜성 박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일터로 복직했을 때 아이와 일 문제로 정말 많은 고민을 하던 때였는데, “내 일을 포기하면서 아이에게 집중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는데 대답은 “아니다”였다. “진짜 훌륭한 엄마는 자신의 일을 훌륭히 해내고 그것이 아이에게 본이 될 때다.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을 잘해내는 엄마가 정말 휼륭한 엄마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힘이 났다.
리빙센스_ 그럼 결국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가 감당해야 할 문제일까?
김주하_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의 몫도, 가족의 몫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바로 사회의 몫이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여자로서 성공하라면서 아이를 낳고 일에 전념하면 ‘독한여자’라 부르고, 아이에게 전념하면 ‘이러니까 여자는 뽑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적인 관념, 생각, 통념, 제도적인 사고들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워킹맘들에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리빙센스_ 예를 들면?
김주하_ 성공한 여자들을 보면 그 옆에 훌륭한, 아니 그를 도와주는 남편이나 아버지, 친정어머니 등 워킹맘을 곁에서 돕고 이해해준 사람이 꼭 있었다. 가장 큰 예로 남편의 이해나 격려와 같은…. 나 역시 아이를 주중에 잘 돌보긴 어렵다. 주중에는 오후 3시에 출근해 새벽 1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주말에는 아이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쏟으려 한다. 그런데 1년 넘게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일과 육아를 하는 김주하가 아닌 인간 김주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일을 하지 않고 아이에게 모든 시간을 다 쏟는 엄마들은 이런 기분이 더 많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 양육의 양과 질적 측면으로 본다면, 양적으론 포기했으니까 질적으로 매번 “뭐하지? 이번 주말엔 어디로 데려가지? 수족관에 가야 할까? 아님 동물원? 어떻게 해줘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엄마들은 이 말을 이해한다. 내 아이와 둘만 있는 공간에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순간 확 무서운 기분도 든다는 말. 워킹맘들이 아이를 위해 24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다.
리빙센스_ 전업맘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는 것도 좋았을 텐데….
김주하_ 사실은 그게 쉽지 않다. 대부분 나와 같은 워킹맘들과 의견을 공유한다. 주중과 주말의 생활 패턴이 틀린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리빙센스_ 많은 워킹맘이 왜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김주하_ 일과 육아에 시달린다고 해서 남편들이 “일 그만둬” 하고 말하는 건 정말 이기적인 발언아닌가? “애가 크고 나면 그때 일을 다시 해라”라고 말한다면, 사실 그게 자신의 경우라면 쉬울까? 할 수 있을까? 전문직이라 그 일을 다시 이어서 할 수 있으면 몰라도 30대를 보내고 40대에 들어서서 새로운 일을 배우거나 분야를 개척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무서운지. 김주하고 앵커고를 떠나 어느 누구든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무섭고 두려운 거다. 남편이 곁에 있어준다 해도 자기 일이 아니니까 일단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프니까.
리빙센스_ 그러면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게 가장 옳을까?
김주하_ 육아는 엄마의 일도, 가족의 일도 아니다. 바로 우리 사회의 일이다. 그러니까 사회의 생각이 바뀌어야 모든 게 바뀐다. 어린이 집, 수유 시설 몇 개 늘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워킹맘들이 학교에 가서 워킹맘이라는 걸 속일까. “엄만 이런 일을 하고 있고 너를 위해 노력해”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모자랄 판에, 워킹맘인 걸 알면 전업맘들이 만든 스터디 모임에 끼워주지도 않아 워킹맘인 사실을 숨기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적인 저출산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수많은 엄마가 설마 몸매 관리 때문에 아이 낳기를 기피한다고 생각하나? 결코 아니다. 낳아서 제대로 책임질 환경이 못 되니까 못 낳는 거다.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관념도, 통념도, 가정도, 엄마의 생활도 바뀔 수 있다.
리빙센스_ 워킹맘, 성공하려면 멀었나? 워킹맘의 성공시대, 과연 언제쯤 올까?
김주하_ 엄마들을 몰아붙이지 말고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1년 동안 모유 수유해야 한다”고 말하긴 쉽지만 여자들은 두렵다. 1년 뒤에 다시 오면 내 책상이 없어질지도 모를까 겁부터 나는 게 현실인데….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여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워킹맘이 정말로 성공하는 시대? 적어도 10년은 기다려야 할 거다. 첫째 길러봤다고 둘째 아이 육아가 쉬운 건 아니다. 모든 게 ‘case by case’다. 아직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은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면 지금 겪는 모든 어려움을 시행착오들이라 생각하고, 설사 잘해냈더라도 그 다음에 교만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워킹맘들이 해내고, 해내서 이겨야만 하는 현실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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