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액션 영화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배우들은 악당들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는 역할 정도... 내가 어렸을 적에 TV에서 방영해 주던 <뽀빠이>에서 여주인공인 올리브의 대사는 '뽀빠이~ 살려줘요~'가 대부분이었고, 영화에서도 여주인공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액션은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여주인공도 더 이상 '살려줘요~'를 외치는 수동적인 캐릭터에서 스스로 악당을 쳐부수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했다. 여기 이 영화들처럼... 다국적 여성 스파이들의 활약을 담은 첩보 액션 영화 [355], 퇴역한 해병대 특수 요원이 내부 공사 중인 아파트에서 무장한 괴한들과 맞서 싸우는 [도어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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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 남성에서 다국적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진부함이 새로움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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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사이먼 킨버그

주연 : 제시카 차스테인, 다이앤 크루거, 페넬로페 크루즈, 루피타 뇽, 판빙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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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국제 마약 조직의 수상한 거래가 포착된다. 그들이 거래를 한 것은 마약이 아닌 최첨단 해킹 장비. 이 장비만 손에 넣는다면 세계 그 어떤 전자 장비도 무력화시킬 수가 있다. 콜롬비아 정보기관인 DNI는 거래 현장을 급습하지만 DNI 요원인 루이스 곤잘레스(에드가 라미레즈)가 이 장비를 빼돌려 사라진다. 시간이 흘러 루이스는 CIA에 거래를 제안하고 CIA 요원 메이슨 브라운(제시카 차스테인)과 닉 파울러(세바스찬 스탠)가 루이스와의 거래를 위해 신혼부부로 위장하여 파리에 파견된다. 하지만 독일 BND 요원인 마리(다이앤 크루거)의 방해로 인하여 루이스는 놓치고, 닉은 정체불명의 집단으로부터 살해된다. 전 세계 테러 집단이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메이슨은 단독 작전보다는 팀을 꾸릴 것을 제안함으로써 다국적 여성 스파이로 구성된 '355'가 결성된다.

[355]가 특별한 이유는 다국적으로 구성된 여성 스파이들이 팀을 이룬다는 설정이다. 미국 영화인 만큼 당연히 팀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CIA 요원 메이슨이다. 그리고 메이슨이 가장 먼저 영입한 인물은 미국의 영원한 우방인 영국의 전직 MI6 요원이자 천재적인 해커인 카디자(루피타 뇽)이다. 영화 초반 메이슨과 대립 관계를 형성하다가 결국 팀에 합류한 것은 미국과 2차 세계대전을 벌였던 독일 BND 요원 마리이고, 콜롬비아의 심리학자인 그라시엘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비록 스파이는 아니지만 해커 장비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지문)을 가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합류한다.

마지막 멤버인 중국 블랙요원 린미성(판빙빙)이 가장 흥미롭다. 아마도 미국 다음으로 거대한 중국 시장을 노린 캐스팅인듯한데 하필 판빙빙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탈세 혐의로 체포되며 중국 흥행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억지스러운 설정까지 끌어모아 중국 캐릭터를 만들어낸 영화의 정성이 뻘쭘해져버렸다. 영화의 제목인 '355'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활약한 이름 없는 여성 스파이들의 코드 네임이라고 하는데, 영화의 제작까지 겸한 제시카 차스테인은 시리즈화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의 흥행 실패로 인하여 그 꿈은 좌절될 듯하다.

[355]의 흥행 실패는 중국 개봉 무산과 코로나19 오미크론 창궐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초호화 캐스팅이 무색하게 영화의 만듦새가 상당히 허술해서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것뿐이다. 일단 전 세계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최첨단 해킹 장비의 등장이라는 설정부터가 너무 과했다. 하지만 이는 영화적 설정이라 넘어가 줄 수가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첩보 액션 영화라면 뭔가 치밀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355]에는 그러한 치밀함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다. 국제 마약 조직의 거래 현장을 급습한 DNI는 해킹 장비의 위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일개 요원에 불과한 루이스의 손에 들어갔다. CIA는 그 좋은 정보력을 놔두고 루이스에게 헐값에 장비를 사려고 하고, BND는 멍청하게도 CIA의 작전을 방해하며 쓸데없는 액션만 남발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헛웃음이 나오는 설정은 해킹 장비를 입수한 중국이 국제 테러 조직의 리스트를 수집하기 위해 해킹 장비를 경매에 내놓는 장면. 그래, 판빙빙을 캐스팅하기 위해 중국 블랙 요원이 필요했던 것은 알겠는데, 이거 억지스러워도 너무 억지스러웠다. 그렇게 위험한 장비라면 그냥 부숴버리면 될 일인데, 이걸 가지고 허튼짓을 하다가 결국 테러 조직에게 영혼을 팔아 버린 닉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다. 닉도 그냥 메이슨을 비롯한 '355' 요원들을 사살하면 될 텐데, 괜히 죄 없는 요원들의 가족만 죽이고, 위협이 될 것이 뻔한 '355' 요원들은 모두 살려주며 자리를 뜬다. 닉이 메이슨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메이슨을 사랑했으면 애초에 배신을 하질 말던가. 이건 그냥 변명의 여지없이 설정이 억지스러운 것이다.

'355' 요원의 마지막 복수는 아예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보여준다. 이렇게 간단히 국제 테러 조직을 찾아낼 것이라면 그동안 왜 그런 개고생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모든 소동이 끝나고 닉은 오히려 CIA에서 승진을 하고, 메이슨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는 설정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실 감독이 사이먼 킨버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그가 누구인가? 매튜 본과 브라이언 싱어가 어렵게 쌓아 올린 '엑스맨 시리즈'를 [엑스맨 : 다크 피닉스]를 통해 단번에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솔직히 [엑스맨 : 아포칼립스]부터 약간 불안하긴 했다.)

다국적 여성 스파이들의 활약이라는 [355]의 설정 자체는 매력적이다. 미국, 영국, 독일, 중국, 콜롬비아까지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견제하는 나라들의 정보 요원들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적을 초월하여 힘을 합친다는 설정은 분명 새롭다. 게다가 시리즈화된다면 세계 각국 여배우들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볼거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얼마든지 한국과 북한 정보 요원이 '355' 요원이 되어 서로 티격태격하며 인류의 악과 맞서 싸운다는 설정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기본 설정이 매력적이어도 그를 뒷받침해 주는 스토리 라인이 허술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355]가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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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맨] -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여성 퇴역 군인에게 액션 쾌감을 원한 것은 욕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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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기타무라 류헤이

주연 : 루비 로즈, 장 르노, 악셀 헤니, 루퍼트 에반스, 줄리안 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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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서 해병대 복무 중 미국 대사와 가족을 지키는 임무에 실패하여 끔찍한 트라우마만 안고 제대한 알리(루비 로즈)는 지인의 소개로 리모델링 공사를 앞둔 고급 아파트의 '도어맨'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아파트에는 관계가 껄끄러운 형부, 존(루퍼트 에반스)과 조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부활절 저녁 식사에 초대된 알리는 다시 예전처럼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한다. 하지만 하필 그 시각에 아파트에 숨겨진 고가의 미술품을 노린 빅터(장 르노) 일당이 침입을 하면서 알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총을 집어 들게 된다.

사실 뻔한 이야기이다.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퇴역 군인이 주인공이고, 폐쇄된 건물이 무대이며, 범죄 조직으로부터 인질로 잡혀 있는 가족을 지키라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주인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영화의 제목은 '도어맨'이지만, 어찌 보면 '도어우먼'인 셈. 그 덕분에 주인공인 알리와 형부인 존의 알싸한 과거가 추가되었고, 영화 초반 빅터 일당은 알리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문제는 [도어맨]이 여성 주인공이라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알리와 존에게는 과거가 있다. 애초에 존과 썸을 탔던 것은 알리였지만,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주거가 일정하지 않았던 알리는 임무를 위해 떠나야 했고, 존은 알리의 언니와 결혼한 것. 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알리의 언니가 사망하면서 존과 알리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죄책감으로 남아 버렸다. 꽤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이다. 존과 알리의 관계를 발전시킨다면 [도어맨]은 단순히 치고받는 액션 영화에서 드라마가 가미된 액션 영화로 발전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도어맨]은 그러지 않는다. 존과 알리의 흥미로운 관계를 애써 설정해 놓았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과거 회상 대화로 대충 마무리한다. 아파트의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어서 알리의 반격을 도와주는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조카, 줄리안(맥스 스탠튼)이 아빠와 이모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순조롭던 알리의 반격에 적신호가 켜지는 등의 설정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어맨]은 그저 알리의 힘겨운 액션에만 치중한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매력적인 것은 빌런 두목인 빅터이다. 악당이라고는 하지만 꽤 신사적인 엘리트 스타일이다. 사실 빅터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었다면 존을 살려둘 이유가 없다. 미술품을 찾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고, 무사히 찾는다 하더라도 그의 범죄에 대한 증인이 될 테니까. 하지만 [도어맨]은 존과 알리의 관계에서도 그랬듯이 빅터 역시도 매력적으로 캐릭터 구축해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부하이자 알리의 동료 '도어맨'인 보르즈(악셀 헤니)에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더 아쉬웠다.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액션 영화에서 액션만 있으면 되지, 괜히 드라마적인 요소를 기대한 것이니까. 이상하게 여성이 주인공을 맡으면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것 역시 나의 선입견일지도... [도어맨]의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적 요소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영화를 봐도 전혀 액션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비밀 장소와 출입구가 가득한 아파트 내부를 이용해서 알리가 빅터 일당을 하나씩 처치하면서 전설적인 액션 영화 [다이하드]의 쾌감을 안겨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도어맨]은 그저 미지근할 뿐이다.

애초에 주연을 맡은 배우가 루비 로즈였으니 드라마적 요소를 기대했던 것은 무리이긴 했다. 루비 로즈는 [레지던트 이블 : 파멸의 날], [트리플 엑스 리턴즈], [존 윅 : 리로드, [메가로돈] 그리고 최근작인 [뱅퀴시]를 통해 꾸준히 액션배우로 얼굴을 알렸다. 특히 [뱅퀴시]에서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연기력은 아직 물음표인 배우이다. 여성 스티븐 시걸이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이니... 액션 영화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한다고 해서 변화의 흐름에 맞는 액션 영화는 아니다. 이렇게 단순무식한 액션 영화라면 주인공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별 상관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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