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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자살했다] 마지막편. 살아 있는 자만이 생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
9  enterskorea 2021.01.11 13: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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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만이 생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좋아한다. 언제 들어도 좋은, 희망이 차오르는 말이다. 남편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도 큰소리로 들려주었을 테다.

 

이 바보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남편은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끝났다고 생각하고 경기장에서 나온 선수나 다름없다. 아직도 수비수를 뚫고 나갈 틈이 있는데, 골을 넣을 기회가 얼마든지 남아 있는데 그는 남은 경기를 포기했다. 더는 경기에 참여할 수도 역전승을 기대할 수도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한 것이다.

 

가끔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막판 뒤집기를 하는 장면들이 있다. 눈을 뗄 수 없게 집중을 하게 만드는 경기들 말이다.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게 스포츠 경기이다. 축구와 야구 등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들이 마지막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마치 우리 인생의 축소판 같다.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기에 인생도 스포츠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넘어지고 싸우고 다치고 퇴장당하고 다시 모여 작전을 짜는 등 경기를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다. 특히 선수마다 각기 다른 기량으로 팀플레이를 하는 모습은 멋있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았다가 나빴다가 슬펐다가 기뻤다가 변화무쌍하니 그 흥미진진함이 스포츠 못지않다. 또 우리 안엔 각기 다른 기량을 가진 선수들처럼 다양한 자원이 수없이 많다. 설령 경기에서 지고 있더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느 순간 승자로 우뚝 서기도 한다.



 

미리 다 아는 영화나 스포츠 경기는 재미가 덜 하다. 흥분할 이유도 없고 안타까워할 이유도 없다. 주인공이 죽는지 사는지 헤어지는지 결혼하는지 다 알고, 몇 대 몇으로 누가 승자가 되는지 다 아는 재방송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다행히도 우리의 인생은 재방송이 없다. 오로지 생생한 생방송이다.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기적과도 같은 반전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결과물이 무엇이었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살아만 있다면 지금 바로 생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남편이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를 종종 상상한다. 어쩌면 나의 고집대로 우리는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의 짐작처럼 우리는 영영 남남이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원수 같은 감정의 부부일지라도 둘 사이에 자식이 있다면 완전한 남이 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감정의 골이 깊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아이가 넷이나 되는데 어찌 남이 되겠는가.



 

살아 있기만 했더라도 남편은 지금쯤 나와 친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로 그를 만나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의존적인 성향의 나는 힘들면 그에게 퍼붓기라도 할 요령으로 찾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웃을 일도 울 일도 생기고, 우리 관계의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가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기회를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도 함께 보람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찰나의 생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버렸다. 그 결과 남편은 나와 아이들은 물론 그의 삶에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남편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한 후에 나는 그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을 욕하고 원망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나 역시 죽고 싶단 생각이 계속 차올랐다. 자살 유가족들이 일반인보다 우울증에 시달릴 확률이 7, 자살 위험이 8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이나 원망은 둘째 치고라도 당장 현실의 힘듦은 나를 깊은 우울감에 시달리게 했고, 그 끝은 늘 죽음을 떠오르게 했다.



 

죽음으로의 유혹이 올 때마다 나는 늘 그 뒤의 일들을 생각했다. 죽음 뒤엔 아무것도 없다. 남편이 나와 아이들에게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죽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래서 자살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다.

 

99퍼센트의 확신 사이로 단 1퍼센트라도 망설임이 든다면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위기나 고통은 없다. 그 위기와 고통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전에 앞서 자살만 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반드시 변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시간이 걸려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조급해할 것 없다. 누군가가 도와줄 수도 있고 때론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도 많다. 그러니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자. 가다 보면 무슨 일이 생긴다. 폴 퀸네트의 말처럼 우리는 함께 살아남았지 않았는가.



상세내용보기
남편이 자살했다 <곽경희> 저

센시오, 2020년11월

평점

 



시리즈 보러가기 (▼클릭!)

1. [남편이 자살했다] 1편. 그날은 이혼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2. [남편이 자살했다] 2편.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밥을 먹는다

3. [남편이 자살했다] 3편. 다시 치른 장례식

4. [남편이 자살했다] 4편. 내 삶의 체리 향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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