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 SF와 코미디의 결합은 신정원 감독에게 조금 벅찼나 보다.
쭈니 2020.12.31 11:18:16
감독 : 신정원
주연 :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 이미도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소희(이정현)에게 남편 만길(김성오)는 체력, 경제력에 자상함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이다. 그런데 요즘 그의 행보가 수상하다. 혹시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 소희는 고등학교 동창 세라(서영희)의 소개로 흥신소를 운영하는 닥터 장(양동근)을 찾아간다. 그런데 며칠간 만길을 미행하던 닥터 장은 뜻밖의 사실을 소희에게 보고한다. 만길은 사람이 아닌 언브레이커블이라 불리는 외계인이라는 것. 언브레이커블의 목표는 지구를 차지하는 것인데 그들은 인간으로 위장하여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배우자를 사고로 위장하여 죽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길은 소희를 독살하려 시도를 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소희는 닥터 장, 세라, 그리고 우연히 합류하게 된 양선(이미도)과 함께 만길 죽이기에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만길로 인하여 오히려 소희 일행은 위기에 빠지는데...
2020년 나의 마지막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2003년에 개봉하여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벤치마킹한 영화인 듯 보인다.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영화의 분위기와 엉뚱한 캐릭터, 그리고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에 맞서 싸운다는 SF적 설정까지... 하지만 결국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제2의 [지구를 지켜라!]가 될 수 없었다. B급 SF 영화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농축시킨 [지구를 지켜라!]와는 달리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그저 영화적 재미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시실리 2km]로 공포와 코미디 장르를 효과적으로 접목시킴으로서 호평을 받은 신정원 감독은 이후 [차우], [점쟁이들]을 통해 자신의 장기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왔다. [차우]에서는 식인 멧돼지라는 신선한 소재로 토속적인 괴수 영화를 선보였고, [점쟁이들]은 [시실리 2km]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캐릭터의 묘미도 살려냈다. 그런 그가 [점쟁이들]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코미디와 공포의 조합이라는 그동안의 틀을 깨고, 코미디와 SF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일단 나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물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의 재미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1시간 5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정현, 서영희, 이미도의 연기가 좋았는데,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도대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소희, 섬뜩한 매력을 물씬 풍기는 세라, 다분히 푼수끼 넘치는 양선의 조합은 [점쟁이들]에서 다양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으로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가던 신정원 감독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단점 또한 명확하다. 소희, 세라, 양선의 캐릭터의 매력에 비해 만길과 닥터 장의 캐릭터는 많이 약하다. 특히 닥터 장의 캐릭터는 상당히 뜬금없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닥터 장이 언브레이커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언브레이커블도 아닌 그가 죽여도 죽지 않는다는 설정은 단지 코미디를 위한 과한 설정인 듯 보인다. 만길의 무시무시한 능력이 절대 죽지 않는 것인데, 그러한 능력을 만길뿐만 아니라 소희와 닥터 장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더 이상 만길은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닌 것이 된다. 이렇게 만길의 위력이 사라지는 순간 영화의 긴장감 또한 반감되니, 아무리 영화의 제목이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라 할지라도 영화는 몇몇 캐릭터만큼은 죽였어야 했다.
공포와 코미디를 잘 접목시켰던 신정원 감독의 이전 영화와는 달리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코미디만 부각된다. SF는 그저 만길 일당이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설정뿐이고, 죽여도 죽지 않는 만길에 의한 공포는 개나 소나 전부 죽여도 죽지 않으니 딱히 공포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냥 죽여도 죽지 않는 캐릭터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난장 코미디가 전부이다. 뭐 그러한 까닭에 시간 50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되었지만 두 가지 장르를 동시에 즐기는 쾌감은 아쉽게도 이번 영화에는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공포와 코미디를 접목시킨 영화로 신정원 감독이 다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그에게 아직 SF와 코미디의 접목은 벅차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