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채널의 진화, 중고 거래 사이트로 ‘비움’!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아직 말짱한데 그대로 쓰레기로 버리려니 아깝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커가고 나의 삶이 바뀌면서 필요 없어진, 혹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물건들도 집 안 곳곳에 쌓여 있다. 서랍이나 수납장을 열기 무섭다. 안 맞는 옷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길이는 줄어들고 있지만, 너비와 부피에 있어서는 확장을 시작한 지 오래인 나의 바디 사이즈 때문에 많은 옷이 의미없어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입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빈티지 가게 하나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데 이럴 때 등장한 중고 거래 사이트는 내게 신세계를 보여준다. 우연찮게 생긴 디자인이 예쁜 다이어리, 치마를 안 입는 내게 필요없는 고탄력 팬티 스타킹 등의 상품을 가격 비교를 통해 가격 확인 후 사이트에 올렸더니 연락이 온다. 거래가 성사되면 어디서 만날지를 정하고, 얼굴도 모르고 해당 상품을 들고 약속 장소로 간다.

“저는 검정색 옷에 흰색 마스크를 쓰고 노란색 쇼핑백을 들었어요. 차종과 차 번호 알려주실래요?”

그리고 간첩 접선하듯 극적으로 만나 해당 상품을 건네고 대금을 수령한다. 잔돈이 없으면 계좌이체를 하기도 한다. 여전히 모르는 사람에게 개인 정보를 주기는 그래서 휴대폰 번호나 계좌번호는 가급적 주지 않고 해당 사이트(앱)의 채팅만으로 직접 만나서 전달해 주는 방식이 좋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명은 길게 쓰지 않을 상품을 연결해서 여러 명이 쓰는 것은 그 상품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면에서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거래라고 생각한다. 저성장 기조에서 새 제품보다는 반듯한 중고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어차피 쓰지 않을 것 판매하여 현금을 확보하고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살 수도 있으며, 또한 나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상품이 된다면 기꺼이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중고물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우리 아이들을 봐도 그렇다.

물론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중고 거래에서 가장 많은 사기 유형은 선입금 후 연락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도 ‘당신 근처의 마켓-당근마켓’이 가지고 있는 직접 만나 전달해주는 ‘직거래’가 좋다. 나름 007 작전을 수행하는 듯한 재미도 있어서 좋다.

‘비움’을 ‘힐링(Healing)’이라 표현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복잡하게 많은 것을 줄이거나 심플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비우는 것은 힐링이 된다. 회사에서도 서류와 이메일 그리고 컴퓨터의 파일이 넘쳐나지만, 집에서도 모든 것이 넘쳐난다. 정말 놀라운 가격의 딜이 던지는 유혹에 영락없이 넘어가 집에 물건들이 쌓여간다. 필요한 것도 있지만, 예뻐서 혹은 싸서 등등 스스로 위안하며 샀던 많은 품목은 이제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다.

최근 ‘비움’을 위하여 집 정리를 했는데, 옷과 책이 가장 큰 문제였다. 책은 언젠가 다시 읽을 것 같아 잔뜩 쌓아두었는데, 대부분은 지난 1년간 한 번도 펴지 않은 책이다. 알라딘의 앱을 열어 바코드를 찍고 중고로 판매가 가능한 책은 박스에 넣었다. 집도 깨끗해지고 3만 원 정도를 벌게 되었다. 집에서 읽으려고 가지고 왔던 서류도 꽤 있었는데 다 버렸다. 트렌드는 지났고 그 업무는 이미 끝났고, 필요한 서류는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고 시간 날 때 태블릿이나 휴대폰에서 찾아 읽으면 된다.

옷은 안 맞는데, 유행이 지났는데도 왜 가지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 옷에 깃든 날씬했던 나의 추억,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정들이 쌓여 버리려고 하니 낡았던 옷이 갑자기 말짱해 보이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를 버리는 것 같아 맘이 안 좋다. 과감하게 휴대폰을 꺼내 네이버 밴드에 ‘추억의 물품들’ 계정을 하나 열고 나 혼자 입장하여 각종 물건들의 사진을 찍고 그 물건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커멘트를 한 줄씩 달고 재활용으로 분리수거했다. 가지고 있다고 쓸 것도 아니고 단지 그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 추억마저도 처분하는 것 같아 찜찜했던 것을 나만의 디지털 공간에 사진으로 남기고 처분한 것이다.

너무나도 무거워진 집안의 살림들을 생각하면 집에 놓을 물건이 필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집이 필요해졌다. 아니면 아직 생이 남아 있지만 쓰레기로 혹은 분리수거로 버려져야 할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고 커피값도 벌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집도 깨끗해지게 할 수 있다. ‘행복한 힐링의 시간,’ 나는 중고 거래를 그렇게 부른다.

최근에 읽은 책 『파타고니아』의 저자이자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도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미미한 시도들을 통해 보다 단순하게 살아야, 혹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해야 정말 중요한 모든 면에서 빈곤하고 결핍된 삶이 아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했다. 비우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무경계 인간 호모옴니쿠스 <송승선> 저

비욘드북스, 2020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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