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밥을 먹는다

나는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남편이 술을 끊고 저녁에 일찍 집에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과일을 함께 먹으며 대화도 하고 싶었다. 주말이면 함께 장도 보고,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 야외에 소풍도 나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평범한 삶이 내겐 꿈같은 일이었고, 결코 붙잡을 수 없는 행복이었다.

남편이 떠나고 꽤 오래도록, 잠시나마 내가 남편이 죽기를 바랐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그런 못된 마음을 품었기에 남편이 떠난 듯하여 괴롭기만 했다. 그가 용서해 달라며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던 장면이 수시로 떠올랐다. 첫 번째 이혼을 하던 날에 둥그런 그의 어깨가 힘없이 무너지던 모습, 마지막 날 아침에 그가 토치를 찾던 모습도 떠올랐다. 그 모든 순간에 그가 얼마나 슬프고 아프고 절망스러웠을지 생각하니 미안함에 목이 메었다. 낮에도 문득문득 그 기억들이 떠오르면 저절로 고개가 떨구어졌다.

몸을 피곤하게 하거나 술을 마셔 잠을 청하는 것은 잠시 고통을 잊게 해줄 뿐 결코 고통의 무게를 줄일 수는 없었다. 피하고 도망친 고통은 어김없이 이후의 시간에 나를 찾아와 고통의 무게를 더했다.

고통의 무게가 늘고 불면의 밤이 길어지자 나는 문득 대학원 수업 시간에 배운 ‘인지치료’가 떠올랐다. 고통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나의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기에 생각을 바꿈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치료법이다.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서 허우적대던 당시의 나로서는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나는 일단 그런 생각들을 멈춰보기로 했다. 자책이나 죄책감과 같이 나를 갉아먹는 고통스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이 더 이어지지 못하도록 그것을 잘라내려 노력했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라면 힘겹더라도 멈춰야만 했다. 더군다나 나와 함께하며 내 표정 하나하나에도 영향을 받는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나를 고쳐 나가고 치유해 나가야 했다.

남편이 떠나던 때, 나는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배우자의 자살이라는 고통스러운 사건이 나의 일이 되자 나의 배움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남편을 홀로 떠나보낸 여자가 그깟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꾸역꾸역 밥을 챙겨 먹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내 속을 다 보여주며 상담받을 만한 곳을 찾았다. 남편을 욕 하든 나 자신을 비하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여도 미쳤다고 하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집 가까운 곳에서 훌륭한 정신과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어떻게 오셨나요?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부터 터져 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묵묵히 들어주고 넉넉하게 받아줄 것만 같은 안도감이 느껴지니 그간의 서러움이 쏟아져 나온 듯했다.

“얼마 전에 남편이 자살했어요…….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서둘러 닦으며,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와 시선을 맞춘 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선생님은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남편은 남편의 운명대로 살다가 간 것이라고 나를 위로해주셨다.

“자신이 그동안 살면서 고생하고 참고 희생하신 건 왜 생각 안 하십니까?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착한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저 멀리서 전쟁이 나도 본인 때문에 전쟁이 났다고 하실 겁니다. 남편분을 미화하지 마세요! 아이들에게도 아빠를 미화해서 얘기하지 마시고요. 그분의 못난 모습은 못난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마지막의 그 못난 결정마저도 그분의 선택임을 받아들이세요.”

처음이었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잘못이 아님을 항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제야 나도 정신이 좀 들었다. 완전한 내 편이 생긴 기분이 들자 갑자기 어디에선가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찬찬히 내 이야기를 들으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야! 한 방 먹이고 갔네!”라고 소리치시는 게 아닌가! 게다가 선생님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은 마치 나 대신 남편에게 화를 내주고 있는 듯했다. 덕분에 나는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듯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랬구나! 내가 남편에게 한 방 먹은 거구나! 그것도 아주 크게.’

죄책감이 뚝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날 그 선생님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하셨던 말은 내게 평생 못 잊을 말로 남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분은 나를 절반은 치료하셨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니 보약을 먹은 듯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제야 밥이 제대로 넘어갈 것 같았다. 내 탓이 아니었다. 웃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을 끌어안고 남은 삶을 씩씩하게 살아내려는 나의 모성애이며 의지였다.

가족의 자살은 슬프고 아픈 일이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떠안은 고통과 슬픔을 말로 표현하고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점점 가벼워지고 마침내 떠나보낼 수 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고통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까지 공격하게 되어 관계와 건강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니 흘려보내고 떠나보내야 한다. 우리는 죄인이 아닌 피해자이기에 다시 행복해도 된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남편이 자살했다 <곽경희> 저

센시오, 2020년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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