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기 위한 첫걸음

“내가 번아웃이라고?”

나에게 처음 찾아온 번아웃 증상은 가벼운 두통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환자와 상담을 하고 나면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가슴이 꽉 막혔다. 증상이 나타나면 진통제와 소화제로 해결했고, 일하면서 약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떨 땐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대기도 하고, 입에서 불을 뿜는 것처럼 뜨거운 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월급을 진료비와 약값으로 쓰면서 약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는 약을 먹고 증상이 가라앉으면 나는 괜찮아진 거라 착각하고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프면 약을 먹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증상은 만성화가 되었다.

병원에서 에너지를 쓰고 나면 내 몸에는 어떤 운동을 할 만한 조금의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고, 다음 날이 되면 약에 의존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픈 상태에서 아픈 사람들을 케어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방전된 몸을 이끌고 퇴근하던 어느 날, 오랜 친구를 찾아갔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는 이전부터 내가 통증으로 힘들어한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내 얼굴만 봐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고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몸에 나타나는 증상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나를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이 말을 들었지만,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약으로 빨리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 방법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동안 지금보다 더 아프면 그때 나를 보는 연습을 하겠다고 미뤄왔었다. 그러나 그날은 다른 때와 달리 잠시 머뭇거렸다.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데 나를 볼 필요가 있을지, 나를 보는 연습은 어떻게 하는 건지, 나를 보면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건지…’ 이런 생각 속에 감춰진 내 진짜 마음은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다. 하지만 아프면 약을 찾는 일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통증 없는 일상을 살고 싶었다. 그날부터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덮는 약 대신 내 몸을 열어 나를 보는 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며칠 후 친구는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루이스 L. 헤이의 <치유>를 보내주었다. 책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마음을 열어 나를 보기 위해 우선 긴장감에 꽁꽁 묶여 있었던 몸부터 먼저 열기로 했다. 몸을 열기 위해서 내 몸에 붙어있는 지방과 노폐물부터 걷어내기로 했다. 몸이 가벼워지면 내 안을 보기 쉬워지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야 필요한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테니까. 이전에는 외적인 미를 얻고 싶어서 했던 다이어트였다면 지금은 내면의 나를 위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몸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커피 대신 히비스커스 티와 따뜻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렬한 운동을 할 에너지가 없어서 운동 대신 가볍게 할 수 있는 절 스트레칭과 호흡을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와 가끔 사찰에 갔다. 그곳에 가면 엄마는 항상 절을 하셨다. 나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절을 했다. 예법은 잘 모르지만, 절을 하는 동안 잡념이 많이 올라오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기도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절을 할수록 몸이 조금씩 활기로 채워졌다. 힘들지 않을 만큼 절을 하고 앉아서 차오르는 숨을 차분히 가라앉힐 때면 바람과 함께 숨을 쉬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절을 하고 앉아서 두근대는 가슴을 느끼는 그 순간에는 내가 생생히 살아있었다.

이제부터는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오랫동안 ‘껍데기의 나’로 살면서 만들어왔던 고정된 생각, 부정적인 감정 등 좀처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이런 습관들을 천천히 바꿔보기로 했다.

단번에 삶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내 안에서 저항이 많았기에 점진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일상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연습과 내 기분이 어떤지 나를 수시로 살피려고 노력했다.

나를 보는 연습을 할수록 이상하게도 ‘껍데기의 나’로 사는 건 노력하지 않고도 되는 것들이 많았다. 생각이 올라오는 대로 따라가고, 감정이 느껴지는 대로 끌려가고, 배가 고프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건 내가 의도적으로 연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의 삶이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고도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왜 우리는 살면서 꾸준히 연습해야 ‘진정한 나’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문득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 준 ‘껍데기의 나’도 나에게 필요한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껍데기의 나’는 ‘진정한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기에, 그런 ‘껍데기의 나’는 그 소중한 존재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나이기에….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장재희> 저

나무와열매, 2020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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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 1편. 나는 그렇게 열심히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