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이혼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남편이 자살했다. 그날은 우리가 이혼하기로 한 전날이자 나의 생일이었다. 남편의 자살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이혼에 대한 가장 강력한 거부였으며, 내 생에 잊히지 않을 가장 엽기적인 생일선물이었다.

“나는 마흔아홉 살에 죽을 거야.”

남편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마흔아홉 살을 한 달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남편에겐 오랜 지병이 있었다. 남편은 신경, 생식기, 눈, 입, 피부 등에 궤양이 생기는 만성 염증성 질환인 ‘베체트병’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환자의 평균수명이 마흔 살이라고 한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남편은 “이 정도면 많이 살았다”며 무심하게 말을 던지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그가 오래 살지는 못할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평균수명보다 여덟 해나 더 살아낸 그가 스스로 선택한 충격적인 죽음에 나는 속절없이 공황상태가 됐다.

“네가 떠나면 나는 자살할 거야.”

남편은 나와 함께 보낸 25년의 세월 동안 내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자살’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애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남편과 성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했었다. 그러자 그는 너와 헤어지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다며 집에 가는 나를 계속 따라왔다. 경제사범으로 억울하게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도 내가 떠났으면 자살하려 했다며 고백했다. 그저 나를 붙잡아두려고 하는 말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진심이었고, 나와 이혼하기로 한 전날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우리 부부의 불화, 그리고 자살이라는 남편의 극단적인 선택을 설명하려면 ‘술’이 빠질 수 없다. 연애 시절부터 술을 과하게 마신다 싶었던 그는 결혼 후 매 순간 술에 의지했고, 급기야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됐다. 나는 25년을 함께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됐고 너무나 싫었다.

*     *     *

집을 나와 혼자가 되니 참았던 원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거면서 그동안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것인지, 내 인생에서 사라지려면 곱게 사라질 일이지 왜 가장 최악의 방법을 쓴 것인지, 그렇게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나 혼자서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라는 것인지 쉴 새 없이 원망이 쏟아져 나왔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하고는 언제나처럼 뒷감당은 나의 몫으로 던져두었다. 아이들 때문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내게 폭탄을 안겨주고 간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화가 나도 따지고 싸울 수도 없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내게 모두 던져놓고 그는 혼자 훌훌 떠나버렸다.

사실 나는 누군가 원망할 사람을 찾고 싶었던 듯하다. 사람들은 남편의 술친구들이 아닌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장례식 내내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악한 여자로 볼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왠지 남편이 술을 마시고 방황했던 것도 내가 집안을 편안하게 못 해주니까 그랬을 거라고 손가락질하고 있을 것 같았다. “애는 또 왜 저리도 많이 낳았을까?”, “이래저래 남편이 어깨가 무거웠겠구먼” 등등 온갖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슬퍼 보이고 더 초라해 보여야 했다. 그래야 그들에게 덜 비난 받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장례식 내내 나의 모습은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듯했다.

“화장하러 들어갑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3일간 이어지던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화장터로 이동했다. 남편의 화장을 알리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갑자기 마지막 설움을 토해내듯 악다구니를 쓰며 통곡을 해댔다.

“그냥 가면 어떡해! 그냥 가면 어떡하냐고! 큰애랑 풀고 가야지! 작은애랑 풀고 가야지! 나랑 풀고 가야지! 이 나쁜 놈아! 그냥 가면 어떡해? 나한테 왜 이래? 당신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냐고! 우리 자식들은 어떡해? 불쌍한 내 자식들 어떡하냐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나는 급기야 남편의 관 앞에 드러누워 나뒹굴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떠나기 전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멱살을 움켜쥐고 어떻게든 대답을 듣고 싶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그 뻔뻔한 태도는 어디로 가고 비겁하게 사라지려고 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남편이 자살했다 <곽경희> 저

센시오, 2020년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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