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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 과거는 아주 가끔 현재를 죽일 수도 있다.
13  쭈니 2020.12.02 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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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충현

주연 : 박신혜, 전종서

지난 주말, 아무리 스마트폰의 극장 상영 시간표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코로나19의 위험을 무릅쓰고 극장으로 달려가 볼 만한 영화는 보이지 않지 않는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아직 내겐 넷플릭스가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공개된 영화 리스트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웬걸... [콜]이 떡 하니 등장하는 것이다. 지난 3월부터 극장 개봉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던 [콜]은 결국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사냥의 시간]에 이어 극장 개봉을 취소하고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를 선택한 두 번째 한국 영화인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에 가는 것도 꺼림칙한 상황인데, 이렇게 안방에서 극장 개봉을 기다렸던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코로나19 때문에 세상이 변해도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다.

[콜]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서연(박신혜)을 보여준다. 서연의 어머니(김성령)는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서연은 그런 어머니가 영 못마땅하다. 사실 서연이 어머니를 싫어하는 것은 20년 전 화재 사고 때문이다. 어머니가 급하게 외출을 하느라 가스레인지 끄는 것을 깜박 잊었고, 그로 인한 화재로 서연의 아버지(박호산)가 죽고, 서연은 화상을 입은 것이다. 서연은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안고 텅 빈 집에 온 서연. 그런데 자꾸 이상한 전화가 온다. 놀랍게도 상대방은 20년 전 서연의 집에서 살았던 영숙(전종서)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었지만 서연과 영숙은 서로 통하는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다. 영숙의 어머니(이엘)는 영숙에게 악령이 들어갔다며 그녀를 가두고 학대한다. 친구도 없이 집에만 가둬지내던 영숙에게 서연은 유일한 친구가 되고, 영숙의 도움으로 20년 전 화재 사건이 해결되어 서연의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서 서연과 영숙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하지만 가족과의 행복한 나날로 인하여 서연이 영숙에게 소홀하자 영숙의 태도는 점점 변한다. 게다가 영숙이 어머니에게 살해되었다는 기사를 찾아낸 서연이 영숙에게 알려주면서 결국 영숙의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악마가 깨어나고 만다.

'당신이 만약 과거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면...' 예전에는 이 질문이 꽤 로맨틱하게 들렸었다. 김정권 감독의 [동감]으로 대표되는 과거와의 통화 영화들은 대부분 풋풋한 멜로 영화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봉주 감독의 [더 폰], 그리고 케이블 TV 드라마 <시그널>처럼 과거와의 통화를 스릴러의 형식으로 풀어나간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도 대부분 과거와의 통화를 과거에 죽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런 면에서 [콜]도 비슷하다. 서연은 20년 전 과거인 영숙과의 통화를 통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이대로 끝을 맺는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문제는 영숙이 사이코패스라는데 있다.

'당신이 만약 과거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면...' 이 질문은 유효하다. 하지만 그 끝에 단서가 하나 더 붙어야 한다. '단, 전화 통화한 사람이 사이코패스라면...' 과연 이 질문에 '나도 과거와 통화하고 싶다'라고 나설 사람이 있긴 할까? 범죄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모를까 사이코패스와의 통화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서연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처음부터 영숙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무리 영숙이 자신의 아버지를 구해줬을지라도 그녀와의 통화를 거부했을 것이다. 서연의 통화 덕분에 살아남은 영숙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사실을 눈치챈 성호(오정세)마저 살해한다. 서연은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성호가 사라지자 영숙이 성호를 살해했음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서연은 영숙의 전화를 꺼린다.

[콜]이 영리했던 것은 영숙의 정체를 처음부터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예고편만 보더라도 영숙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영화를 봤다면 영숙은 그저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는 불쌍한 아이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아주 서서히 영숙의 본성이 드러난다. 어머니를 죽이고, 성호를 죽이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써 각성을 하게 되는데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이 서연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서연에게도 그들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서연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숙에겐 죄책감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도 부르는데, 타인에 대한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죽이고도 그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그와는 달리 서연은 영숙의 어머니, 그리고 성호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영숙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의 성호에 대한 죄책감이 더 크다. 그러한 죄책감은 영숙을 멀리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영숙이 분노하게 만들어 영숙의 사이코 패스적 기질을 더욱 발달시킨다.

서연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녀는 그저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그녀가 원했던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20년 전의 영숙과 전화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서연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그것은 바로 과거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를 바꿈으로써 현재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따위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죽었고, 어머니가 난치의 병에 걸린 그 상황이 최악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바꿈으로써 겪게 되는 극한 공포는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의 [프리퀸시]에서도 나온다. 과거의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은 현재에선 나비효과가 된다. 그러한 나비효과가 좋은 방향일지, 나쁜 방향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에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위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연에게 나비효과는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와 함께 즐거운 일상을 며칠간 보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과거의 영숙이 무슨 일을 벌이면 현재의 서연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영숙이 자신과 관련된 무슨 일을 벌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쯤 되면 영숙이 아닌, 과거라는 존재 자체가 두려워진다. 영숙이 몸소 보여줬다. 과거는 이렇게 현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개인적으로 [콜]이 재미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종서의 미친 연기력이다. 이미 [버닝]을 통해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던 전종서는 [콜]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서태지를 좋아하는 성장을 멈춘 20대 여성처럼 보였다가, 점점 광기를 폭발시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되어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섬뜩하다. 특히 서연이 40대가 된 영숙과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공포의 강도가 더욱 막강해진다. 20년 전 천방지축 같던 영숙과는 달리 20년 후의 영숙은 냉정함마저 갖춘 노련한 연쇄살인마가 되어 있었다. 그 앞에서 서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망치고, 문을 잠그고,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앉아 현실을 부정하는 것뿐일 것이다.

영화의 결말도 섬뜩하다. 대부분 이런 류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연쇄살인마를 무찌르고 어머니를 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콜]도 처음엔 비슷했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쿠키영상으로 내가 기대했던 결말과는 사뭇 다른 결말이 펼쳐진다. 차라리 쿠키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막상 보고 나니 찝찝한 뒷맛이 강렬하게 나를 사로 잡는다. 과거를 바꾸려 했던 서연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대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여운이 더욱 짙게 남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당신이 만약 과거와 통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살면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만약 과거와 통화를 할 수 있다면 내가 저지른 실수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 사람은 어차피 끊임없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내 실수가 없었던 것이 되었다고 해도 그로인하여 또다른 치명적인 실수가 새롭게 생겨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저 아버지를 살리고 싶었던 서연은 그러한 나비효과를 처절하게 맛보았다. 그녀에게 과거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가 주어진다면 아마도 주저하지 않고 내던지지 않을까? [콜]은 보고 나니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아주 가끔 현재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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