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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르잔 사트라피

주연 : 로자먼드 파이크, 샘 라일리, 안야 테일러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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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2020년 마지막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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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에 이어 [마리 퀴리]이다. 요즘 나보다 훨씬 바쁜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이 영화만큼은 극장에서 꼭 봐야 한다고 콕 집어준 영화들이다. 아들은 코로나19 걱정 때문에 외식을 하자고 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른생활 청소년이지만, 실존했던 과학자를 소재로 한 [테슬라], [마리 퀴리]는 극장 관람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는 못했다. 물론 가장 구석진 자리로 예매를 해야 했고, 텅 빈 상영관에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으며, 팝콘과 음료 등 음식물 섭취는 당연히 거부하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향해야 했지만... 하긴 실존했던 과학자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흔하지는 않다. 올해를 통틀어 고작 [테슬라]와 [마리 퀴리]가 전부이고, 만약 코로나19로 인하여 흥행 기대작들의 개봉이 연기되지 않았다면 이 두 영화도 극장에서 개봉되지 못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솔직히 흥행성이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니까.

그래도 니콜라 테슬라에 비해 '마리 퀴리'는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 같은 관객에게도 익숙한 이름이기는 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큰맘 먹고 할부로 구매한 위인 전집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여성 위인은 신사임당, 나이팅게일, 퀴리 부인뿐이었다.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나이팅게일은 희생정신으로 위인이 되었다면, 퀴리 부인은 과학자로서의 업적이 뚜렷하다. 그녀는 최초의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여 방사성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고, 그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1903년 남편과 함께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1911년에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물론 대부분의 위인이 그러하듯이 '마리 퀴리'에게도 논란은 있다. 특히 그녀가 발견한 방사능은 이후 전쟁에 이용되며 대량 살상무기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후 아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마리 퀴리'의 방사능 연구가 대량 살상 무기에 이용된 것은 그녀의 탓이 아니라면서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한 사람들 대신 '마리 퀴리'가 오명을 뒤집어쓴 것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하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렇듯 [마리 퀴리]는 그저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즐기고 잊어버리는 영화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마리 퀴리'라는 위인에 대해 진중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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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이민 여성 마리 스쿼도프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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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는 폴란드 이민자인 마리 스쿼도프스카(로자먼드 파이크)가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연구실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실 그녀가 프랑스로 이민을 온 것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그녀는 파리 유학을 결심했고,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진취적인 파리의 학계라고 하더라도 여성이라는 것은 마리에게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와도 같았다. 게다가 마리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누군가와 타협을 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더욱더 그녀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리의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삐에르이다.

피에르는 마리에게 연구실을 제공해 주고, 그녀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한다. 처음 마리가 피에르의 제안에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피에르에게 '당신의 애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선언하는 장면에서 당시 그녀가 당했을 성차별이 느껴졌다. 남성 위주의 학계에서 여성학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명한 남성 학자의 애인이 되는 것이 공공연한 관례였을 것이다. 게다가 마리는 피에르가 자신의 연구를 훔쳐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감추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여성 과학자의 연구보다 남성 과학자의 연구가 학계에서 더 인정을 받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으며, 피에르가 마음만 먹으면 마리의 연구를 가로채 자신의 업적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피에르는 그런 몰지각하지 않았고, 뛰어난 연구 실적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던 마리는 피에르와의 만남으로 날개를 단다.

마리의 연구가 급진전된 것은 피에르와의 공동 연구를 받아들이면서부터이다. 영화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표현되었지만 영화 초반 마리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마리 입장에서는 피에르의 공동 연구 제안에 굉장히 고민하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1903년 노벨 물리학상 시상식에 피에르만 참가하여 수상 소감을 발표한 것에 대해 마리가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다. 피에르는 노벨 재단에 항의하여 마리와 공동 수상자가 되었지만 임신한 마리를 대신하여 홀로 시상식에 참가한다. 마리는 그것조차 용납이 안되었던 것이다. 남편인 피에르의 수상조차 자신의 연구 성과를 빼앗겼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녀의 자부심은 강했고, 어쩌면 그것이 여성으로써 마리가 학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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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마리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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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피에르가 마차에 치여 사망한다. 방사능에 오래 노출된 피에르의 몸은 이미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있었다. 피에르가 죽기 전 마리에게 파리를 잠시 떠나 공기 좋은 시골에서 요양을 하자고 애원하는 장면은 가슴이 아프다. 마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며 피에르의 요청을 거절한다. 마리도, 피에르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발견하여 최고의 명예를 안겨준 방사능이 인체에 치명적인 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피에르가 허망하게 죽고 나서 마리는 무너지고 만다. 평생 동반자였으며, 라이벌이었고, 버팀목이었던 남편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마리 혼자 편견으로 가득한 학계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잘 버텨냈다. 1906년 5월 피에르의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소르본 대학교수가 되었고, 1911년에는 라듐과 폴로늄 발견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 무렵 그녀의 사생활은 논란을 일으켰다. 동료이며 유부남인 폴 랑주벵(아뉴린 바나드)과 불륜에 빠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폴의 아내가 폭로를 하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데,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 저명한 여성 과학자의 불륜은 남성 위주 사회에서 씹고 물고 뜯기에 딱 좋은 가십거리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매일 밤 사람들이 마리의 집 앞에 모여 '폴란드로 꺼져라'라며 시위하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마리와 폴의 불륜은 MBC TV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마리 퀴리]에서 이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 마리 퀴리'의 인간적인 측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공과 사를 빠짐없이 영화에 표현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지일까? 확실한 것은 마리와 폴의 불륜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음으로써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고, 영화에서 붕 뜬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폴과의 불륜 와중에도 마리가 피에르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마치 폴과의 불륜에 대한 마리의 변명처럼 느껴졌다. 피에르를 잃고 나서 허망한 마음에 폴과의 불륜이라는 방황을 잠시 한 것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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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서의 '마리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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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가문에는 총 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1903년 노벨 물리학상, 20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와 1903년 마리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피에르 퀴리, 그리고 1935년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이렌 퀴리(안야 테일러 조이)이다. 이렌 퀴리는 마리와 피에르의 첫째 딸로 1897년 9월에 태어났다. 그녀가 아버지인 피에르를 잃은 것은 그녀의 나이 열 살 때였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어머니인 마리와 폴의 불륜 논란이 터졌으니 그녀의 유년 시절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렌은 노년에 접어들어 길을 잃은 마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든든한 동료가 되어 주었다.

이렌의 진가는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고 유렵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발휘된다. 이렌은 전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아주 작은 부상에도 팔과 다리가 절단되는 것을 목격한 후 어머니인 마리를 설득한다. 방사능을 이용한 뢴트겐 투사기만 있다면 부상병들의 부상 부위를 쉽게 진단하여 불필요한 절단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을 병적으로 싫어한 마리(영화에서는 병원에서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라고 설명한다.)는 이렌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결국 자신이 발견한 방사능이 사람을 구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이렌의 설득에 넘어간다. 그리고 프랑스 국방부에 자신이 받은 노벨 메달을 걸고 협박 아닌 협박으로 뢴트겐 투사기 보급 약속을 얻어내고 직접 전쟁터로 향한다.

지난 3월에 넷플릭스에서 본 <타임 리스 시즌 2>에서 세계 1차 대전 중 부상자 치료에 전념하는 마리와 이렌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과학자가 왜 전쟁터에서 저 고생을 하나? 의아했는데, [마리 퀴리]에서는 방사능의 순기능에 대한 설명으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이후 이렌은 마리의 뒤를 이어 인공 방사능 연구를 통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니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하게 자란 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이렌 퀴리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도 좋았다. [마리 퀴리]에 그녀가 출연하는 줄 미처 몰랐기에 영화 후반 그녀의 등장은 참으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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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로 '마리 퀴리'가 이룬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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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리 퀴리'의 일생을 담담하게 쫓아간다. 그녀의 불륜이 언급될 정도로 '마리 퀴리'를 미화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업적을 폄훼하지도 않았다.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은 최대한 '마리 퀴리'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그러한 노력은 영화 중간중간에 마리가 발견한 방사능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방사능은 암에 걸린 어린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세계 2차 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도 사용되었으며, 냉전 시절 미국의 더 강력한 원자 폭탄 실험에 사용되었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상 깊은 것은 피에르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감에서 노벨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대량 살상 무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며 자신이 발견한 방사능은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뒤에는 히로시마 원폭 장면이 곧바로 나온다. 피에르의 바람은 이기적인 후세 사람들로 인하여 결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1934년 방사능으로 인한 골수암, 백혈병으로 죽음을 앞둔 마리가 미래의 히로시마 원폭 현장, 미국의 원자 폭탄 실험 현장, 체르노빌 폭발 현장을 목격을 방문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장면도 나온다. 방사능을 발견한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은 방사능을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것이 마리의 잘못일까?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은 관객에게 질문한다.

죽음을 앞둔 마리에게 삐에르가 나타나 '당신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을 뿐이야. 그 파문은 당신 책임이 아니야.'라고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는 방사능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 참 씁쓸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도, 방사능을 발견한 마리와 피에르도 진정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 텐데... [마리 퀴리]는 '마리 퀴리'의 일생과 함께 방사능을 대량 살상 무기로 개발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질책도 함께 느껴지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