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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마지막편. 너무 보고 싶은 내 사랑
8  enterskorea 2020.10.27 1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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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 싶은 내 사랑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남편은 많이 지쳐 가고 있었다. 항암치료는 3주에 한 번씩 가서 받기로 했고, 남편은 환자 진료에 더욱 집중했다.

 

한번은 한의원을 좀 쉬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남편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였고 오히려 화만 더 돋우고 말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남편은 다음 날 변함없이 한의원으로 출근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진료할 거라 했다. 남편의 실력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번졌고, 방까지 잡아가며 타지에서 오는 환자도 생겨났다.

 

아픈 내 가족을 돌본다는 심정으로 환자를 치료했던 남편은 반드시 낫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의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세세하게 관심을 기울였고, 그만큼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직원들 실수에는 더 엄격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냈고, 그럴 때면 난 직원들의 방패 노릇을 자처했다.

 

직원들 역성을 드는 내게 그 사람은 넌 왜 항상 내 편은 안 들어주냐.” 했고, 자기는 강한 사람이잖아.”라고 답했다. 세상 누구에게도 잘난 척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한테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하고 잘난 존재였다. 아프면서부터는 더 차갑고 엄하게 나를 대하고 자존심을 지키던 남편이었다.



 

약을 잘 권하지 않았던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침 맞으러 오는 환자를 많이 받았다. 한 번은 퇴근 후 녹초가 되어 들어오더니 사랑하는 우리 보리에게 인침 놔줄 힘도 없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고, 나는 기호 씨 환자들이 나한테 고맙다 해야겠다고 받아쳤었다. 늘 그렇게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던 사람, 마지막 생명의 불씨가 꺼져갈 때도 그 열정은 절대 꺼지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 몸뚱이 내 곁에 두자고 정작 그 사람 마음은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겨우 숨을 거두기 직전에야 그간 묻어두고 지냈던 내 사랑을 확인하고 가버렸다. 나만 지독하게 사랑하다 외롭게 간 내 남편 양기호.

 

내가 그 사람과 더 좋은 미래를 꿈꾸는 동안 그는 육체적 고통을 안으로 삼키고 공기처럼 차분하게 지내며 가족을 두고 멀리 떠날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바람처럼 가버리고 싶다고 했던 그 사람.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내 남편. 나한테 너무나 과분했던 그 사람이 분에 넘친 사랑만을 남기고 멀리 떠나 버렸다.



 

되돌아보면 우린 사랑한단 표현은 하지 않았어도 언제나 함께였다. 남편은 어느 곳이든 나를 데리고 다녔다. 드라이브하면서 맘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인생 공부를 시켜줬고, 전국의 명소는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세상 구경도 시켜줬다. 어떨 땐 종일 목적지도 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내 남편 양기호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꿋꿋하게 지켜준 내 가정, 내 가족이다. 그 누구도 생각 없이 뱉는 말들로 흔들지 않으면 좋겠고, 나도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남편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빠가 나를 안 만났으면 안 죽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 누구도 엄마처럼 우리를 키울 순 없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난 아이들이 늘 바른 생각과 따뜻한 배려심이 넘치던 아빠를 본받을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썼고, 아이들은 늘 엄했던 아빠 대신에 사랑으로 감싸줬었던 나에게 고마워했다. 난 아빠가 그동안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기에 너희들이 잘 클 수 있었던 거라고 했다.



 

며칠 뒤 꿈속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이 방으로 오셨고, 어머님이 이제는 기호를 그만 놓아주라고, 기호는 여기 없다고 하셨다. 난 다음 날 바로 산소로 달려가 울며 소리쳤다.

 

어머님이 그렇게 아끼던 큰아들 데리고 가시면서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해주시더니 이제 이곳에 없으니 그만 잊으라고요? 어머님 저 진짜 예뻐하고 사랑하신 거 맞나요? 차라리 저랑 아픈 제 아들을 데리고 가시지, 왜 아까운 사람을 데리고 가셨나요?”

 

원망스러운 마음에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 곁에서 더는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진짜로 가버린 걸까. 아이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난 스님께 전화를 드려 이제는 정말 그 사람이 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 주셨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따뜻했고 봄도 다른 때보다도 빨리 찾아왔다. 우리가 함께 자주 걸었던 강변, 집 뒷산은 올해도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눈이 부셨다. 하얀 팝콘처럼 활짝 만개한 벚꽃은 나를 더욱더 슬프게 해 차마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없었다.

 

봄이면 뒷산에서 냉이랑 쑥, 달래, 머위 같은 걸 캐 조물조물 무쳐 식탁에 올렸었는데, 뒷산에 마지막으로 오른 지도 한참이 지났다. 한의원 앞에 있는 철쭉과 동백도 유난히 더 빨간빛으로 물들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봄가을로 꽃이 피거나 단풍이 들면 멋진 풍경을 찾아 드라이브하며 양 기사를 자처했던 내 사랑 기호 씨.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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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보리> 저

아마존북스, 2020년09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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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1편. 서른둘에 찾아온 사랑

2.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2편. 한 번뿐인 인생

3.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3편. 앞으로는 더 강해져야 해

4.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4편. 안녕,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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