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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막막한 우리네 인생을 닮은 영화... [블루 아워], [비바리움]
13  쭈니 2020.10.23 1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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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은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가? 나는 내 스스로를 굉장히 낙천적이라 생각하지만 가끔 멍하니 서서 '힘들다'를 되뇌곤 한다. 젊었을 땐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 앞에서 힘들다. 그냥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금수저들처럼 화려하면서 부족하지 않은 인생을 즐기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인생 동안 우리는 살기 위해 끊임없이 아둥바둥거려야만 한다.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가 그렇다. 일본 영화인 [블루 아워]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린 청춘의 외로움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고, 미국 영화인 [비바리움]은 내 집 장만의 꿈을 섬뜩하게 풍자한 영화이다. 제작 국가도, 장르도 다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왠지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블루 아워] -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에서 해방되는 순간의 행복

감독 : 하코타 유코

주연 : 카호, 심은경

CF 감독으로 나름 잘나가는 스나다(카호). 자상한 남편이 있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해서 같이 있어도 외롭다. 촬영 스텝과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자식 자랑하는 그 앞에서 그녀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어디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그녀의 무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간다. 때마침 할머니를 보러 고향에 왔다 가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스나다. 스나다는 쾌활한 성격의 친구 기요우라(심은경)와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내 외로움의 이유를 알게 되지 않을까?

[블루 아워]는 심은경이 일본에 진출하여 찍은 영화이다. 이미 그녀는 일본 데뷔작 [신문기자]를 통해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연이어 [블루 아워]로 제43회 다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심은경의 연기력은 데뷔하자마자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난 2월 [신문기자]를 재미있게 봤던 나로서는 [블루 아워]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블루 아워]는 내게 지루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자꾸만 눈이 감겨 애를 먹기도 했다. 이 영화가 감독 데뷔작인 젊은 여성 감독 하코타 유코는 스나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과 동년배인 20~30대 여성이 느끼고 있는 외로움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남성이라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도대체 스나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더라. 탄탄한 직장이 있고, 무감각하지만 그래도 자상한 남편이 있고, 성적 욕구를 채워줄 애인도 있고, 돌아갈 고향집도 있고... 그만하면 행복한 거 아닌가?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분명 [블루 아워]는 내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아련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곰곰이 스나다의 외로움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스나다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사나다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유추해보면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고양이를 가차 없이 죽여 버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과 그런 아버지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무기력해 보이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 그리고 괴짜인 오빠에 대한 혐오감이 어렸을 적부터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족으로부터 심리적으로 격리된 그녀는 마음속 가상의 친구를 만드는데,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 혼자 깜깜한 숲길을 걸으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장면은 그녀의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러한 그녀의 어렸을 적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신과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닌 친구 기요무라를 만들어 낸다. 어쩌면 기요무라야 말로 그녀가 닮고 싶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유일한 연대의식을 지닌 할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스나다는 한 단계 성정한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줄 알았던 남편에게 전화하며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 활짝 웃는 모습에서 원치 않았던 고향 나들이가 그녀의 외로움을 조금은 치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나도 그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20대 시절은 취업을 하지 못해 미래가 막막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자상하신 부모님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나를 구박하지도 않으셨고, 주말이면 술 한잔 함께할 친구들이 언제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외로웠고, 그래서 불행했다. 왜 그랬을까? 스나다가 고향 나들이 후 느낀 것처럼 나의 외로움은 나 스스로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그런 이유 없는 외로움을 거친 후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하타코 유타 감독이 [블루 아워]를 통해 20, 30대 젊은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비바리움] - 내 집 장만의 꿈을 공포로 승화시키다.

감독 : 로칸 피네건

주연 : 이모겐 푸츠, 제시 아이젠버그

결혼을 앞둔 젊은 커플 젬마(이모겐 푸츠)와 톰(제시 아이젠버그)은 함께 살 집을 찾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찾는다. 마틴(조나단 아리스)이라는 이름의 괴상한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욘더라는 독특한 마을의 9호 집을 소개받는다. 그런데 젬마와 톰이 집을 구경하는 와중에 마틴은 사라져 버리고 젬마와 톰은 욘더에 갇힌다.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해도 항상 9호 집 앞에 도착하는 것. 9호 집을 불태워도 상관없다. 결국 탈출을 포기할 때쯤 그들에게 택배 상자가 배달되어 오는데 놀랍게도 그 상자 안에는 아기가 들어 있었고, 상자에는 아기를 키우면 탈출할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다. 이제 젬마와 톰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9호 집에서 머물며 이 괴상한 아이를 키우는 수밖에...

[비바리움]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공포 영화에 가깝다. 영화는 오프닝 장면에서 남의 둥지를 강탈하는 뻐꾸기 새끼를 보여 준다. 뻐꾸기는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는데 그렇게 태어난 새끼 뻐꾸기는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 버린다. 작은 어미 새가 커다란 새끼 뻐꾸기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은 마치 새끼 뻐꾸기가 작은 어미 새를 잡아먹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기묘하다. 결국 젬마와 톰은 어미 새이고, 9호 집에 배달되어 온 괴상한 아이는 새끼 뻐꾸기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달리 해석했다. 시내 외곽에 위치한 욘더라는 마을은 우리나라로 치면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같다. 서울 근교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는 서민들이 사기에 벅찰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사람들은 메모 반듯하게 지어진 아파트를 사기 위해 아등바등 일을 한다. 욘더가 서민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대단지 아파트라고 해석한다면 그 이후의 장면들도 약간은 억지스럽지만 짜 맞춰진다. 톰과 젬마는 9호 집에 살게 되고, 그곳에서 아기도 갖게 된다. 비록 낳은 자식이 아닌 배달되어 온 자식이지만... 그리고 톰은 열심히 땅을 파다가 죽고, 젬마는 아이를 키우다가 죽다. 결국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9호 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판타지, 공포스러운 설정을 지운 후 현실에 대입해 보면, 톰과 젬마는 시류에 떠밀려 거액의 빚을 떠안고 대단지 저택을 구입한 후 빚을 갚기 위해 뼈빠지게 일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톰은 욘더를 탈출하기 위해 땅을 파는데 그것은 노동자의 삶과 닮았다. 젬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를 키우는데 여념이 없다. 그것 역시 보통의 우리 어머니와 닮았다. 젬마는 말한다. 그저 집을 갖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내 것이라 믿었던 집은 결국 돈을 대출해 준 후 꼬박꼬박 이자를 챙겨 먹는 은행의 소유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내 것도 아닌 것을 위해 죽도록 일을 했던 것이다.

이렇듯 나는 [비바리움]이 집이라는 공간에 얽매인 현대인의 고달픈 삶을 풍자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내는 그러한 내 해석에 공감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이건 도대체 뭔 영화야?'라고 물었던 아내에게 내 나름의 해석을 이야기해 줬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너무 과한 해석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더라. 뭐 그럴 수도 있다. 결국 영화라는 것은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정답이니까.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화두는 집값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온갖 정책을 쏟아내지만 집값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아직 내 집 장만을 하지 못하는 소시민이라면 [비바리움]은 섬뜩하고, 기괴하고, 잔상이 오래 남을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내 집 장만의 꿈을 남의 둥지를 강탈하는 뻐꾸기 새끼의 이야기에 대입시킨 로칸 피네건 감독의 상상력이 굉장히 돋보이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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