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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4편. 안녕, 내 사랑
8  enterskorea 2020.10.20 15: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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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사랑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남편은 많이 지쳐 가고 있었다. 항암치료는 3주에 한 번씩 가서 받기로 했고, 남편은 환자 진료에 더욱 집중했다.

 

한번은 한의원을 좀 쉬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남편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였고 오히려 화만 더 돋우고 말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남편은 다음 날 변함없이 한의원으로 출근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진료할 거라 했다. 남편의 실력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번졌고, 방까지 잡아가며 타지에서 오는 환자도 생겨났다.

 

아픈 내 가족을 돌본다는 심정으로 환자를 치료했던 남편은 반드시 낫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의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세세하게 관심을 기울였고, 그만큼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직원들 실수에는 더 엄격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냈고, 그럴 때면 난 직원들의 방패 노릇을 자처했다.

 

직원들 역성을 드는 내게 그 사람은 넌 왜 항상 내 편은 안 들어주냐.” 했고, 자기는 강한 사람이잖아.”라고 답했다. 세상 누구에게도 잘난 척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한테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하고 잘난 존재였다. 아프면서부터는 더 차갑고 엄하게 나를 대하고 자존심을 지키던 남편이었다.



 

처음엔 안 그런 것 같다가도 알고 보면 겉과 속이 달라서 마치 양파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것 하나도 숨기지 못해서 진실성 있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거짓이 없던 남편은 늘 한결같은 후자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차가 강변도로에 잠시 정차하자 추억을 더듬듯 말했다.

 

우리 아지트 있던 곳이네, 처음부터 너만 바라본…….”

 

명바라명희만 바라본다는 의미로 보리와 함께 남편이 나를 부르던 애칭 중 하나였다. 세차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나는 그 달달했던 순간까지도 잊고 살고 있었다.

 

세상에 나 같은 놈이 어디 있다고……. 넌 왜 나한테 고맙단 말 안 하냐?”

 

말은 안 했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인생 선생님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빠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다른 낭만 섞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하루하루가 긴장되고 바쁘게 흘러갔다.

 

새로운 항암치료를 마치고 순천으로 내려온 다음 날부터 남편은 진통제를 먹어가며 다시 환자 진료에 매진했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먹는 것도 부실해진 그 사람은 설사와 통증도 심해졌고, 흉수천자와 수혈 때문에 응급실에 더 자주 가야 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남편은 나에게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일에만 전념했다.

 

난 행여나 그 사람을 놓쳐 버릴까 매 순간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냈다. 밤이면 고통에 시달리고 응급실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닌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환자들은 아침이면 늘 한의원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다음 날에도 남편은 어김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적으로도 힘들어 보이고 식사도 거의 못 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좀 쉬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건넸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 사람은 너랑 나랑 뭣 하게!” 하면서 쌩하니 한의원으로 혼자 가버렸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37kg의 마르디 마른 몸으로 환자 보기를 고집하던 그 사람은 722일 아침 결국 집에서 쓰러졌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받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지만, 곧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독종 양기호가 서서히 죽음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보낼 수 없었다. 양기호,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 아픈 몸으로도 나를 철옹성처럼 지켜 주었고,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며 강인한 정신력으로 기적처럼 내 옆에 있어 줬던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이 없던 나에게 끝없는 신뢰감과 사랑을 주었지만, 어느 순간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어졌었던 내 인생 단 하나의 사랑.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마웠던 그 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난 대신 죽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 먼저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아 홀로 먼 길을 떠난 것 같다.

 

201894, 그렇게 그는 가버렸다. 내 생각은 항상 건강한지, 영혼은 제자리에 있는지 생각하면서 잘 살다 오라고…….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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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보리> 저

아마존북스, 2020년09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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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1편. 서른둘에 찾아온 사랑

2.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2편. 한 번뿐인 인생

3.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3편. 앞으로는 더 강해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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