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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줄 수 없는 여행
8  enterskorea 2020.09.22 13: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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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줄 수 없는 여행



 


보고 자란 것이 무섭다고 했던가. 어느 날 아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빠, 나도 아빠처럼 넓은 세상을 다니며 여행하고 싶어.”

여행 좋지. 여행만큼 인생을 배우기 좋은 것도 없지. 스무 살 넘으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다니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자. 책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좋은 공부를 여행을 통해 많이 할 수 있을 거야.”

아빠랑 같이 외국 배낭여행 다니면 재밌겠다. 아빠, 나한테 여행하는 법 알려줄 거지?”

사랑하는 아들아, 자고로 여행이란 것은 가르쳐줄 수가 없단다. 제환공과 윤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느냐. 자고로 여행이란 것은 말이지.”

, 알았어! 나 혼자 다닐게. 우리 따로 다니자.”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지. 아빠가 아들에게는 특별히 가르쳐주도록 하마. 걱정 말거라.”




 


장자(외편)<천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 군주인 환공이 열심히 책을 읽고 있을 때,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노인 윤편이 환공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왕께서 읽으시는 것이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네.”

그렇다면 그 성인은 지금 살아계십니까?”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지금 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군요.”



 


그러자 환공이 화가 나서 말했다.

 

감히 과인이 글을 읽는데 수레바퀴나 깎는 네놈이 무얼 안다고 함부로 참견이냐? 지금 한 말에 변명할 구실이 있으면 좋거니와 이치에 맞는 설명을 하지 못하면 죽으리라.”

저는 제 일의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느긋하게 깎으면 헐거워져 꼭 끼이지 못해 쉽게 빠져버리고, 빨리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빨리 깎지도, 느긋하게 깎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손에 익혀 마음으로 짐작하는 것이라 입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식에게 가르칠 수가 없고, 제 자식도 그것을 저에게 배워갈 수가 없어서 제 나이 일흔이 넘도록 직접 제 손으로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인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정확히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왕께서 읽으시는 그 글이 옛사람의 찌꺼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 말을 듣고 제나라 환공은 윤편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통한 지식만 얻고 있는 환공에 비해, 평생을 바쳐 도인의 경지에 올라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목수 윤편이 더 현명해 보이는 일화다. 책을 읽되 책 속에만 갇혀 있지 말고, 책의 본질을 깨달아야 할 듯하다.




 


현자(顯者)는 선자(先者)의 경험을 책으로 배운다고는 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선자가 쌓은 경험을 책으로 엮지 않았다면 어찌 현자는 책을 통해 선자의 지식을 얻을 수 있겠는가. 책과 실천 경험을 잘 구분하고 판단해서 행해야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살아 있는 거울과도 같다. “공부해라”, “바르게 행동해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먼저 책을 읽고, 올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 사실 아이들에게 매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다. 조금 어렵더라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꾸준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삶에 가장 귀한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이 있다. 세상의 많은 스승들은 진리를 단편적으로 바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와 우화를 통해 제자가 깊은 생각을 한 끝에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든다. 밤새 진리만 딱딱하게 늘어놓으면 제자들은 지루해서 잠이 들 것이다. 깨달음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지혜로운 스승의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지혜로운 스승의 역할은 부모가 해주는 것이 가장 좋고,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깨우쳐야 한다. 깨우침은 많은 경험과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가능하다. 아이의 질문에 자신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총동원한 후 각색해서 재미있게 들려주어, 아이가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

 

삶은 장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아이와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의 발전된 삶이, 아름다운 당신에게도 있기를 소망한다.

 

 



상세내용보기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박석현> 저

바이북스, 2020년08월

평점

 



시리즈 보러가기 (▼클릭!)


1.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아빠와 아들, 단둘이 여행을 떠나면

2.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사랑하는 아들, 우리 여행갈까?

3.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놀며, 놓으며 살아가는 삶

4.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수염이 자라는 자연스러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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