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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문희] - 가볍게 웃고 즐기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찡한 감동과 슬픔이 스며든다.
13  쭈니 2020.09.17 14:54:34
조회 43 댓글 0 신고

감독 : 정세교

주연 : 나문희, 이희준

믿고 보는 배우 나문희

[뉴 뮤턴트]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영화는 [오! 문희]이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테넷]의 경우는 워낙 대작 영화인만큼 개봉 후 한참이 지난 후에도 극장에서 계속 상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오! 문희]의 경우는 워낙 작은 영화라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하향 조정될 때쯤엔 더 이상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극장 시간표에서 [오! 문희]를 발견했을 때 상당히 기뻤다. 뭐랄까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랄까.

내가 [오! 문희]를 기대한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주연이 나문희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문희의 영화는 나에게 믿고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인식을 안겨줬다. [수상한 그녀]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이 캔 스피크], [감쪽같은 그녀], [정직한 후보]까지 나문희는 그 나이대의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당당히 주연을 꿰찼고 노련한 연기로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나문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일찍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 나문희의 영화는 참 포근하다.

[오! 문희]도 마찬가지이다. 정세교 감독은 제목에서부터 아예 나문희의 이름을 갖다 박아 버렸다. 그만큼 나문희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절대적이다. 그녀는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금쪽같은 손녀 보미를 치고 도망간 뺑소니 차량을 추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이희준과의 케미도 꽤 좋았고, 치매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주다가, 어느 순간에는 찡한 감동도 선사한다. [오! 문희]는 내가 나문희의 영화에게 바라는 모든 것이 총 집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 문희]의 상영관엔 관객이 달랑 나 혼자뿐이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오! 문희]를 보며 나문희의 연기에 웃음과 감동을 느낄 수 있을 텐데... 그 점이 참으로 아쉽다.

울음 대신 웃음이 터지는 이상한 치매 코미디

[오! 문희]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목매달아 죽이려는 문희(나문희)를 설득하는 아들 두원(이희준)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두원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는 듯이 대수럽지 않은 태도이지만 문희는 간절하다. 사실 문희의 치매로 인하여 두원이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희의 치매 때문에 두원의 둘째 아이는 유산되었고, 그 충격으로 인하여 두원의 아내는 집을 나가 버린다. 두원의 입장에서는 문희 때문에 아내와 뱃속 아이를 잃은 셈이다. 문희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주원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다며 자살을 결심하는 것이다.

두원은 그러한 어머니가 밉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내팽개칠 수는 없다.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그 누구보다 두원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손가락 탓에 두원이 평생 병신 소리를 들을까봐 작두로 손수 손가락 하나를 잘라주던 어머니가 아니던가. 게다가 어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인생을 낭비하기에는 두원에겐 아직 지켜야 할 소중한 딸 보미가 있다. 문제는 보미마저도 문희의 치매 때문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면서부터이다. 그동안 쌓여 있던 어머니에 대한 두원의 원망이 폭발한다. 보미를 지키기 위해서 이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연을 끊어야만 한다고 결심한 두원. 그런데 바로 그때 의식불명의 보미가 눈물을 흘린다. 마치 두원에게 '아빠 그러지 마!'라고 애원을 하는 듯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코미디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도 이 영화의 장르를 드라마보다는 코미디를 더 앞에 명시했다. 그런데 영화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 영화의 어느 부분이 웃음 포인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원의 입장에서 딸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고, 유일한 목격자인 어머니는 치매로 인하여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이 정도면 웃음 대신 울음이 터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놀랍게도 [오! 문희]는 웃기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의 웃음의 대부분은 나문희의 치매 연기에서 비롯된다.

뺑소니 검거 작전, 성공할 수 있을까?

치매는 참 슬픈 병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매라는 소재는 슬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오! 문희]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문희가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문희의 치매가 아니었다면 보미는 한밤중에 거리에 나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두원의 아내는 집을 가출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두원은 단란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오! 문희]는 그렇다고 주저앉아 신세 한탄이나 하며 울고 있을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비록 문희는 치매에 걸렸지만 보미의 뺑소니범을 잡겠다고 선언했고, 두원과 함께 힘을 합친다.

영화는 중반부부터 추리극으로 변환된다. 물론 추리극을 목표로 만든 영화는 아니기에 [오! 문희]의 추리극이 관객을 만족시킬만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하지도 않는다. 자동차 보험회사에 다니는 두원의 감각과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그래도 유일한 목격자인 문희의 조합은 뺑소니범 검거에 최적화되어 있다. 두원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자동차 공업사를 수소문하고, 문희는 정신이 깜박하는 와중에도 소중하게 챙겨 놓은 증거물들을 두원에게 건네준다. 그렇게 경찰도 하지 못한 뺑소니범 검거 작전을 두원과 문희는 조금씩 진전시키고 결국 범인을 잡기에 이른다.

내가 [오! 문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치매가 소재인데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치매를 이용해서 코미디 추리극을 완성 키시는데 그 완성도가 꽤 높다. 자동차 보험회사 직원과 치매 노인의 수사라고 해서 절대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그들은 단서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고 단서를 따라 조금씩 범인에 대한 그물망을 좁혀 나간다. 코미디, 드라마, 추리극까지... 억지스럽지 않게 끌고 간 정세교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한 가지 아쉬움은 반전이 너무 뻔하다는 것. (스포 포함)

물론 내가 이 영화에 100%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오! 문희]는 영화 중반 이후 추리극 형식을 띄기 때문에 결국 '뺑소니범은 누구인가?'라는 반전에 주목하게 된다. 정세교 감독도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뺑소니범을 꼭꼭 숨겨 두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후반에 갑자기 뜬금없는 캐릭터 하나를 내세워 '얘가 범인이다.'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정세교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2단계 진실 찾기이다. 1단계에서 '애가 범인이다.'라고 먼저 툭 던져 놓고, 관객이 '다 끝났네.'라고 방심하는 틈에 '사실은 얘가 범인이지롱'이라며 반전을 노리는 방식인데, 나는 그러한 꼼수가 영화 중반부터 너무 훤히 보였다.

먼저 영화 초반, 보미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장면을 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에 실려 왔으니 당연히 두원은 울고불고 난리이다. 그러한 두원이 갑자기 담배 피우겠다며 병원 밖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한 여자에게 라이터 불을 빌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장면이 왜 필요하지? 영화에서 아무리 짧은 장면이라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의미 없는 장면은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이 장면은 정세교 감독이 내세우는 첫 번째 범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후반부에 난데없이 뜬금없는 캐릭터를 내세워 범인이라고 우길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한번 카메라가 비쳐준 것이다.

하지만 이 트릭에 속아 넘어간다면 스릴러 영화팬이 아니다. 스릴러 영화를 많이 봤다면 영화에서 필요 이상으로 분량이 많은 캐릭터를 찾으면 진범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 바로 강형사(최원영)이다. 뺑소니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잘 보이지도 않는 CCTV 영상을 두원에게 건네준 것 외엔 딱히 다른 역할이 없다. 오히려 보궐 선거를 핑계로 수사에 손을 놓는다. 그렇기에 강형사는 참 쓸모가 없는 캐릭터인데 이상하게도 최원영이라는 꽤 이름값이 있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그걸로 게임오버이다. 정세교 감독의 반전 트릭은 너무 뻔하다. 물론 [오! 문희]가 본격적인 스릴러 영화는 아니기에 뻔한 반전이 영화의 점수를 많이 깎아 먹지는 못했지만...

가볍게 웃고 즐기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찡한 감동과 슬픔이 스며든다.

작년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머리가 아프시다며 우리 남매를 몇 달 동안 고생시킨 적이 있다. 우리 남매는 직장에 휴가계를 제출하고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모시고 큰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의사는 단순 신경통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이유를 알게 되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병원비만 수백만 원을 우리 남매에게 남긴 작년 소동의 뒷이야기는 혹시 갑작스러운 두통이 치매 증상이 아닌지 걱정이 되셨던 어머니의 노파심이었다. 치매 증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어머니의 두통은 사라졌으니 그만큼 어머니께서는 치매가 무엇보다도 두려우셨던 것이다.

비록 웃음으로 치환했지만 문희의 치매는 문희에게도, 가족에게도 크나큰 슬픔이고 고통이다.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문희는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한다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두원과 보미는 문희의 예상 밖 행동들로 인하여 매번 곤욕을 치러야 한다. 약도 없다. 그렇다고 멀쩡하게 살아계신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낼 수도 없다. 치매의 고통은 바로 그것이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 그것은 비단 영화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 문희]를 보고 나니 유쾌했다. 강형사에게 패자라는 비아냥을 듣던 두원과 치매에 걸린 문희는 보란 듯이 사건을 해결한다. 문희에 의해 내동댕이쳐진 강형사의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슬퍼졌다. 건강한 문희는 그 이후로도 오래오래 살 것이며, 치매 증상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두원과 보미는 또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죽겠다고 나무 위로 올라간 문희의 모습이다. 두원은 자살을 하면 보험료가 안 나온다며 문희를 설득하고, 그 장면은 코믹하게 표현되었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그럴까? 그렇기에 [오! 문희]는 가볍게 웃고 즐기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찡한 감동과 슬픔이 스며드는 전형적인 나문희 주연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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