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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자라는 자연스러움의 미학
8  enterskorea 2020.09.17 13: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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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자라는 자연스러움의 미학



 


유난히 밤하늘에 별이 밝은 날이었다. 평소에는 하늘 한번 쳐다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오면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많다. 특히나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별들을 모두 헤아려보기라도 할 듯 수시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곳은 큰소리로 외쳐도 아무도 들어줄 사람 없는 깊은 산속의 외딴집이었다. 마당 풀밭에 아들과 함께 앉아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둘이서 대화를 나눌 때는 늦은 밤 모닥불 앞일 경우가 많다. 서로의 곁에 나란히 앉거나 때로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 말 없이 모닥불을 지켜보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심한 듯 장작을 하나둘씩 툭툭 던져 넣었다.




 


사랑하는 아들, 이제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네? 곧 수염도 자라고 그러겠네.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나야 뭐, 늘 재밌고 좋지. 벌써 수염 난 애들도 있어. 근데 아빠, 수염 많이 길었다. 왜 안 깎아?”

여행 나왔는데 뭔 상관이야. 아빠도 가끔 수염을 가만히 놔두고 싶을 때가 있어.”

?”

생각해봐. 수염이 평소에 얼마나 고생을 하니? 하루가 멀다 하고 면도기에게 깎이고, 평생 1cm 자라기도 힘든데, 여행 나와서라도 좀 자유를 만끽하게 놔둬야지. 계속 괴롭혀서야 되겠어?”

맞네.”

수염 하니까 생각이 났는데, 아빠한테 수염에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머리와 수염이 많이 자랐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왜 수염을 기르고 다니느냐고 물어왔다. 한국을 떠나온 지 두어 달 되었을까? 이젠 형색이 완전히 현지인과 다를 바 없을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여성이 나에게 왜 수염을 기르냐고 물었다. 굳이 내 수염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내 수염이 거슬렸나?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

 

이유야 어찌 됐든 초점 없는 눈동자에다 장발에 머리띠를 하고 수염을 길게 하고 다니는 내가 이상해 보여서 여자는 그런 질문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을 받으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혼자 여행을 하며 딱히 꾸밀 필요가 없었다. 그저 여행지에서는 최대한 현지인처럼생활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러 현지인처럼 하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어느 순간 너무나도 자연스레 현지인화 되어버리는 터라 외모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나도 모르게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대답을 해버렸다.

 

수염을 왜 기르냐고요? 글쎄요. 물어보는 사람도 처음이지만 수염을 왜 기르냐고 물어보는 질문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다. 결단코 인위적이지 않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들은 대부분이 자연스럽다.

 

머리카락도 자연스레 자라나는 것이지 우리가 일부러 기르는 것이 아니다. 수염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수염을 기른 적이 없다. 단지 수염을 깎지 않고 가만히 놔둘 뿐이었다. 수염을 깎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레 자라나는 수염을 인위적으로 짧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염을 왜 기르냐고 질문하지 말고 수염이 왜 기냐, 이렇게 질문을 살짝 바꿔야 한다. 수염이 긴 이유는 안 깎고 가만히 놔두니까그런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말이다. 단지 수염에 인위적인 행위를 가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어른들 말씀대로 순리대로 자연스레 살면 별 탈 없이 살 텐데, 순리대로 살지 않고, 자꾸 뭔가 인위적으로 무리해서 억지로 하려고 하니 탈이 생긴다.

 

이렇게 여행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아들과 나눌 때면 아들은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그리고 가끔 모닥불을 바라보며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사랑하는 아들, 모닥불에 장작을 넣는 건 자연적인 거야, 인위적인 거야?”

인위적인데. 근데, 춥잖아.”

하하, 정답이다. 추울 땐 장작을 때야지. 아빠는 아들도 자연스러움이 깃든 인생을 살면 좋겠어. 물론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서 안 그럴 때나 못 그럴 때가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것인위적인 것에 대해서 살면서 가끔 한 번씩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 그럼 주위가 환기되면서 스스로를 한 번 더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테니까.”

, 알았어.”

아들, 춥다. 장작 더 넣자.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절대로 네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 자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자식을 키우며 얼마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그렇게 되지도 않고, 내버려 둔다고 딱히 삐뚤어지지도 않는다. 아이의 성향을 무시하고, 억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성향을 잘 파악하여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상세내용보기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박석현> 저

바이북스, 2020년08월

평점

 

 



시리즈 보러가기 (▼클릭!)


1.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아빠와 아들, 단둘이 여행을 떠나면

2.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사랑하는 아들, 우리 여행갈까?

3.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놀며, 놓으며 살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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