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새롭지도 않다. 주말마다 방바닥을 긁으며 '심심해.'를 연발하는 것도... 한동안 넷플릭스가 있어서 무료함을 달랠 수가 있었는데 어느덧 8개월째 주말마다 넷플릭스만 끼고 살았더니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은 영화도 없다. 그저 이번 주 신작 검색을 하거나 아니면 딱히 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 보는 것보다 나은 영화들을 보는 수밖에... 지난 주말 넷플릭스로 본 영화들이 그러했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영화라도 안 보면 이 무료한 주말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봤다. 어떤 영화는 너무 어려웠고, 어떤 영화는 너무 가벼웠으며, 어떤 영화는 너무 달달했던, 지난 주말 나의 무료함을 달래준 세 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을 정리해본다.

​

​

​

​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 내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어려운 영화였다.

​

​

감독 : 찰리 카우프만

주연 : 제시 플레먼스, 제시 버클리, 토니 콜렛, 데이빗 듈리스

​

​

새로 사귄 남자 친구 제이크(제시 플레먼스)와 함께 제이크의 부모님이 사는 외딴 농장으로 향하는 루이사(제시 버클리). 사실 그녀는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제이크의 부모님을 만나러 먼 여행길에 오르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선 항상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며 제이크를 향해 되뇐다. 제이크가 좋은 남자인 것은 알지만 그와의 관계를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 어찌 되었건 루이사는 제이크와 함께 조금은 괴팍한 그의 부모를 만났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눈보라가 더 거세지기 전에 빨리 집으로 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집으로 가려는 루이사를 방해하는 듯이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루이사는 제이크의 집에서 이상한 시간 여행을 하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이크는 갑자기 졸리다며 털시타운에 가서 음료를 사야 한다고 하더니, 이번엔 음료를 버리기 위해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가야 한다고 화를 내며 우긴다. 학교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훔쳐본다며 갑자기 차 박으로 뛰쳐나가 학교 안에 들어간다. 제이크를 찾기 위해 학교에 들어선 루이사. 그곳에서도 루이사의 이상한 체험은 계속된다. 과연 그녀는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찰리 카우프만의 이름값 덕분이다. 그는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으로 유명해졌지만 그보다도 나는 2003년 국내 개봉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어댑테이션]이라는 영화를 보고 찰리 카우프만의 이름을 각인했다. 니콜라스 케이지, 메릴 스트립, 틸다 스윈튼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어댑테이션]은 주인공이 [전 말코비치 되기]를 통해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해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소심남 찰리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이다. 눈치챘겠지만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각본가인 자기 자신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설정을 제외하고는 영화는 꽤 어려운 편이었는데, 그래도 나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어려운 영화일수록 곱씹으며 의미를 해석하는 맛도 있고...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찰리 카우프만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인만큼 만만하게 볼 영화는 아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한다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 몇 분간 멍해졌을 정도로 내겐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던 영화이다. 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더라. [어댑테이션]은 재미있었는데... 내 이해력이 나아가 들며 하락한 것인지, 아니면 찰리 카우프만의 난해함이 나이가 들며 상승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루이사가 겪는 이상한 일들은 무엇일까? 루이사의 독백처럼 시간의 흐름이 과거에서 현재, 미래가 아닌 뒤죽박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영화 후반부 무용극에서 제이크가 죽고 루이사는 누군가에게 끌려갔는데, 그것은 단순한 무용극이 아닌 과거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 왜 털시 타운의 점원은 루이사에게 가지 말고 여기 있어도 된다고 말한 걸까? 영화 마지막 기괴한 노인 분장을 한 사람들은 무얼까?

영화를 보고 나서 알쏭달쏭 한 적은 있었다. 그런 경우 영화가 끝난 후 장면 하나하나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정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아무리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 봐도 정리가 안된다. 결국 다른 블로그의 해석을 통해 약간이라도 정리가 되었는데, 완벽하게 정리는 안되더라. 덕분에 주말 내내 내 머릿속까지 뒤죽박죽이었다. 이제 정말 어려운 영화는 내게 무리인가 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내게 있어서 역대급 어려운 영화였다.

​

​

​

​

​

​

​

[슬립오버] - 21세기형 [스파이 키드]

​

​

감독 : 트리시 씨에

주연 : 세이디 스탠리, 맧,웰 심킨스, 크리 치키노, 루카스 제이

​

​

꽉 막힌 보수적인 엄마, 마고(말린 오케르만)와 제빵사인 물렁물렁한 아빠, 론(켄 마리노)에 불만이 많은 사춘기 딸 클랜시(세이디 스탠리)에게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괴한들이 엄마와 아빠를 납치한 것. 클래시는 말썽쟁이 남동생 케빈(멕스웰 심킨스)와 케빈의 소심한 친구 루이스(루카스 제이), 그리고 자신의 막 나가는 친구 밈(크리 치키노)와 힘을 합쳐 부모님을 구해야 한다. 마고가 남긴 단서를 따라 부모님 구출 작전에 나서는 클래시 일행.

한편 과거를 숨기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마고는 과거 몸담았던 범죄 조직에 남편과 함께 납치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고가의 왕관. 이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때 클래시의 연인이었던 레오(조 멩거넬로)가 필요하다. 마고와 레오는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여 왕관을 훔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하지만 마고와 레오를 단둘이만 놔둘 수 없는 론이 이 작전에 합류하며 오히려 그들은 위험에 빠지는데...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일까? 지난 주말 내가 선택한 두 번째 영화는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가족 액션 영화 [슬립오버]이다. 솔직히 이 영화는 안 보려고 했다. 넷플릭스에서 기본적으로 우리말 더빙으로 설정되어 있을 정도로 [슬립오버]는 어린이 시청자를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미 전날 [스쿠비!]를 본 나로서는 굳이 유치한 영화를 연달아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내게 역대급으로 어려웠기에 머리를 식힐 겸 가벼운 영화 한 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엔 [슬립오버]가 딱 적당했다.

[슬립오버]를 보는 내내 2001년 국내 개봉했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 [스파이 키드]가 떠올랐다. 적국의 스파이 잉그릿(칼라 구지노)과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 OSS 최고의 비밀 요원 그레고리(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은퇴 후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옛 동료 데블린(조지 클루니)가 사건을 의뢰하고 옛 동료들과의 우정을 생각한 그레고리와 잉그릿은 스파이 임무에 복귀하지만 그만 적들에게 잡히고 만다. 이에 그레고리와 잉그릿의 귀엽지만 엽기 발랄한 딸 카르멘과 말썽꾸러기 아들 주니가 위험한 모험 끝에 엄마, 아빠를 구해낸다. 이러한 [스파이 키드]의 내용은 설정 부분에서 몇 가지만 살짝 바꾸고 나면 정확하게 [슬립오버]와 똑같다.

주로 마니아층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스파이 키드]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기록했고, 무려 4편까지 제작이 되었다. 그렇듯 신분을 숨긴 부모를 구하는 엉뚱 발랄한 아이들의 활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잘 먹히는 소재이다. [슬립오버]도 그러한데 각기 개성이 다른 클랜시, 케빈, 밈, 루이스가 허술하지만 귀엽고 기발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들은 가볍지만 그래도 충분한 영화적 재미를 안겨준다. 모험의 끝에는 그들의 성장은 덤이다. 이것이야말로 [슬립오버]의 정체성이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에서 클랜시 일행의 뒷이야기가 나올 땐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진다. 까짓것 긴장감이 전혀 없으면 또 어떠한가.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의 연속이면 또 어떠한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기며 가볍게 웃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성공적인 영화는 아닐까? 기왕이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보며 동심으로 돌아간다면 더욱더 재미있을 영화이다.

​

​

​

​

​

​

[러브, 개런티드] - 사랑은 보장이 불가능하다.

​

​

감독 : 마크 스티븐 존슨

주연 : 레이첼 리 쿡, 데이먼 웨이언스 주니어

​

​

정의감은 충만하나 실속은 전혀 없는 가난한 변호사 수잔(레이첼 리 쿡)에게 이상한 의뢰가 들어온다. 전직 야구 선수였던 에번스(데이먼 웨이언스 주니어)가 온라인 데이트 앱 '러브 개런티드'를 고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러브 개런티드'가 가입을 하여 1,000번의 데이트를 하기 전에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을 보장한다는 약관이 있는데 그건 사기라고 주장한다. 자신은 이미 986번의 데이트를 했고 조만간 1,000번을 채울 예정이지만 아직 사랑을 찾지 못했다면서... 수잔이 보기에 에번스는 '러브 개런티드'의 약관 허점을 이용하여 돈을 타내려는 파렴치한이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는 사정을 감안하여 어쩔 수 없이 에번스의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수잔이 에번스의 변호사가 되기로 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 남자, 보기보다는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일에 전념하기 위해 연애에 관심이 없던 수잔은 에번스와 함께 하면서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수잔이 에번스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러브 개런티드'는 수잔과 에번스의 관계를 재판에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재판에 이기려면 에번스와 멀어져야만 하는 상황. 과연 수잔은 일도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까?

그래, 인정한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는 뻔한 수밖에 없다. 사랑 이야기라는 것은 특별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거기에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수잔과 에번스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 주인공의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듯이, 수잔 역시 에번스가 뻔뻔한 사기꾼처럼 보인다. 하지만 재판을 위해(최소한 수잔은 그렇게 주장한다.) 에번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계획을 알게 된 후로는 그가 달라 보이고, 결국 예정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물론 위기도 있다. 위기가 없는 사랑 이야기는 앙꼬 없는 찐빵이니까. 수잔과 에번스의 위기는 '러브 개런티드'와의 재판에서 비롯된다. 데이트 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러브 개런티드'에 가입하여 몇 번의 데이트를 경험한 수잔. 문제는 수잔과 에번스가 '러브 개런티드'의 가입자인 만큼 비록 데이트를 통해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러브 개런티드' 덕분에 사랑을 이루었으니 소송이 성사가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오해로 인한 사랑의 위기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재판으로 인한 사랑의 위기는 처음이라서 꽤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로맨틱 코미디의 진짜 재미는 배우들의 매력이다. 사랑에 빠지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러브, 개런티드]는 꽤 성공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레이첼 리 쿡과 데이먼 웨이언스 주니어의 흑백 커플이 의외로 너무 잘 어울렸던 것이다. 두 배우가 매력적이다 보니 수잔과 에번스의 사랑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고, 마지막 에번스의 공개 고백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는 나도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게 된다. 이게 매번 뻔하지만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꼭 챙겨 보는 이유이다.

주말을 마감하는 일요일 저녁. 아내는 'TV 봐야 하는데...'라며 투덜거렸지만, 나는 [러브, 개런티드]를 봐야 한다고 우겼다. 꼭 영화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러브, 개런티드]를 보는 내내 아내는 소파 한구석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에궁... 결혼 18년 차 부부에겐 로맨틱 코미디의 마법도 통하지 않는 걸까? 하긴 아내는 결혼 전부터 로맨틱 코미디에 시큰둥했었다. 뭐 어찌 되었건 [러브, 개런티드]를 본 후 나 혼자 달달한 기분에 빠져 버렸고, 그렇게 나의 주말은 끝이 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