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이 필요한 주말, 나에게 동심을 충분히 안겨준 영화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트롤 : 월드 투어]
쭈니 2020.09.08 11:53:53
예전에는 주말이 다가오면 '어디에 가서 소중한 추억을 쌓을까?'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은 '집에서 어떤 영화를 볼까?'를 고민한다. 그러한 기간이 점점 길어지니 무작정 아무 영화나 보는 것보다는 테마를 정해서 영화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이번 주말의 테마는 동심 가득한 애니메이션이다. 이를 위해 Seezn에서 소중하게 모아 놓은 TV 포인트를 사용해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와 [트롤 : 월드 투어]를 다운로드했고, 토요일 아침에는 넷플릭스로 일본 애니메이션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를 봤다. 잔뜩 찌푸린 하늘 탓에 기분이 더욱 우울했던 주말, 그래도 이들 영화 덕분에 동심을 느끼게 지난 주말도 무사히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답다.
감독 : 크리스 버틀러
더빙 : 휴 잭맨,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조 샐다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한 역사적인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토이 스토리 4], [드래곤 길들이기 3] 등과 더불어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다. 물론 수상은 [토이 스토리 4]가 차지했지만 그래도 다섯 편의 후보에 올랐다는 점만으로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작품성은 인정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아들은 주인공인 빅풋 캐릭터가 너무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 영화의 관람을 거부했고 (외모지상주의) 결국 금요일 저녁, 나 혼자 '이 재미있는 것을 혼자 봐야 하다니...'라며 투덜대면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를 관람했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영국의 탐험가 클럽에 가입하고 싶지만 매번 비웃음만 사고 거절당한 라이오넬 프로스트(휴 잭맨)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빅풋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한다. 라이오넬에게 도착한 한 통의 이상한 편지를 근거로 북아메리카로 향한 라이오넬. 그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빅풋을 만나는데, 놀랍게도 라이오넬에게 편지를 보낸 당사자는 빅풋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빅풋은 라이오넬에게 자신의 동족인 예티가 살고 있는 히말라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한다. 라이오넬은 빅풋에게 Mr 링크(자흐 갈리피아나키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히말라야의 예티가 살고 있는 전설의 땅을 표시한 지도를 훔치기 위해 옛 연인 아델리나 포트나이트(조 샐다나)를 찾아간다. 한편 라이오넬이 빅풋을 찾으면 공개 망신을 당할 상황에 처한 탐험가 클럽의 회장 피고트 던세비(스티븐 프라이)는 킬러를 고용하여 라이오넬을 없애려 한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원제는 'Missing Link'이다. 링크는 라이오넬이 이름조차 없는 빅풋에게 지어준 이름으로 빅풋에게는 의미가 깊다. 그와는 달리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2008년 국내 개봉한 에릭 브레빅 감독, 브렌든 프레이저 주연의 어드벤처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와 제목이 같아 개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2012년에는 브래드 페이튼 감독, 드웨인 존슨 주연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 신비의 섬]이 개봉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영화의 수입사는 왜 이렇게 스스로 아류작 흉내를 낸 제목을 지었는지... 참 한심하다.
뭐 국내 제목은 아류작 같아 아쉽지만, 확실한 것은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 라이카 스튜디오의 작품답게 기본적인 재미는 갖추고 있다. (물론 북미 흥행은 굉장히 아쉬웠지만...) 우선 빅풋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어드벤처 영화로 영화가 진행되지 않는 점이 신선하다. 영화는 빅풋인 Mr 링크 대신 명예욕에 사로잡힌 탐험가 라이오넬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허울만 좋은 탐험가 클럽 가입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주변을 제대로 볼 줄 몰랐던 라이오넬은 Mr 링크, 아델리나와의 모험을 통해 이기적인 면모를 탈피하고, 주변을 챙길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마지막 남은 빅풋 Mr 링크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동족인 예티가 살고 있는 히말라야에 가기 위해 라이오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라이오넬은 오로지 Mr 링크를 통해 빅풋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유명세를 떨칠 생각뿐이다. 이러한 유명세가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은 탐험가 클럽의 회장 피고트의 추악한 본모습으로 드러난다. 결국 라이오넬은 아델리나의 통렬한 일침과 자신의 도움이 절실한 Mr 링크를 통해 명예욕, 유명세 따위가 아닌 단지 모험이 좋아 탐험가가 되었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탓에 3D 애니메이션처럼 매끈한 맛은 없다. 아들의 말처럼 캐릭터들은 거칠고 못생겼으며, 영화를 위해 들인 정성에 비해 영화의 때깔은 솔직히 비호감에 가깝다.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다 보면 하나의 짧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땀 나는 노력이 들어갔는지 느껴진다. 어린이 관객도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그 속에 어린을 위한 깨달음도 숨겨져 있기에 남녀노소 함께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소문에 의하면 계속된 흥행 실패로 라이카 스튜디오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고 하는데... 부디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앞으로도 영원하길 기대해본다.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 초, 중반의 다크한 분위기가 후반에는 긍정의 무한 게이지로 변환된다.
감독 : 사토 준이치
더빙 : 시다 미라이, 하나에 나츠키
가족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토요일 아침은 넷플릭스를 혼자 독차지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소재, 장르, 관람등급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마음대로 고를 수가 있다. 나의 선택은 지난 7월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일본 애니메이션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이다. 일단 [펭귄 하이웨이]를 제작한 스튜디오 콜로리드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과 고양이 가면을 쓰면 고양이로 변한다는 판타지한 소재가 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취향은 아내와 아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나 혼자 보는 수밖에 없다.
'무한 게이지 수수께끼 인간' 줄여서 '무게'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사키 미요(시다 미라이)는 히노데 켄토(하나에 나츠키)를 드러내놓고 짝사랑한다. 하지만 켄토는 미요의 과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대놓고 무시한다. 그런데도 미요는 상관이 없다며 싱글벙글이다. 사실 미요는 고양이 타로로 변해 켄토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 당연히 귀여운 길고양이 타로가 미요라는 사실을 모르는 켄토는 계속해서 미요를 밀어내고, 결국 미요는 인간의 가면을 가면 장수에게 주고 고양이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실종된 미요를 애타게 찾는 가족, 친구들, 그리고 켄토의 모습을 보며 미요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양이 섬으로 향하는데...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의 장르를 정한다면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다른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와는 약간 결이 다르다. 대부분의 하이틴 로맨스가 경쾌하거나 아니면 대놓고 관객의 눈물을 강요하는데 반에 [울고 싶은 아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경쾌하지도, 그렇다고 최루성 멜로도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하이틴 로맨스의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게 약간 다크하다. 그래서 더욱 인상 깊었다.
사사키 미요는 겉보기엔 쾌활하게 행동하지만 사실은 어렸을 적에 어머니의 가출로 인하여 버림을 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재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신은 가족 모두에게 필요 없는 존재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단지 사랑받고 싶다는 그녀의 욕망은 가면 장수의 꾐에 쉽게 넘어갔고, 귀여운 고양이로 변하여 켄토의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되자 인간으로서의 삶보다는 고양이로서의 삶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다. 결국 미요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쾌활한 척 감추는 인간 가면과 고양이 가면을 번갈아가며 쓰는 셈이다. 그렇게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미요의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켄토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과한 기대 탓에 억눌린 채 살고 있는 켄토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어머니에게 제대로 말도 못 한 채 감정을 억누르고 살고 있다. 그렇기에 켄토의 입장에서 미요는 부담스럽지만 부러운 존재이다. 그녀의 쾌활한 모습이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미요도, 켄토도, 자신의 본모습을 가면 속으로 감추며 살고 있는 셈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성인도 아닌, 고작 중학생에 불과한 미요와 켄토에게 이런 짐을 안겨주다니...
하지만 결국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후반부에 가서는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의 정석대로 흘러간다. 가면 장수에게 인간 가면을 빼앗기고 점점 고양이로 변해가는 미요는 인간 가면을 되찾기 위해 고양이 섬으로 향한다. 그리고 켄토 역시 미요를 구하기 위해 고양이 섬에 가면서 고양이 섬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한 후반 장면은 영화 초, 중반의 다크한 분위기와는 결이 다르다. 약간은 코믹하고, 경쾌하고, 미요의 별명답게 무한 게이지가 느껴진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약간 아쉬운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가면 쓰고 거짓된 얼굴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던 미요와 켄토 역시 어쩔 수 없이 쾌활한 10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트롤 : 월드 투어] - 화려한 색상과 흥겨운 음악, 우울한 당신을 위한 진수성찬
감독 : 월트 도른, 데이빗 P. 스미스
더빙 : 안나 켄드릭, 저스틴 팀버레이크
무려 TV 포인트 5,500점(부가세 포함)이 투자되었다. 내가 Seezn에서 결재한 TV 포인트 중에서 가장 큰 금액이다. 비디오 대여료가 1,500원이었던 시절을 살았던 내게 OTT 결제 금액의 한계치는 2,500원(부가세 별도)이다. 하지만 [트롤 : 월드 투어]가 2,500원으로 금액이 내리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트롤 : 월드 투어]는 내게 기대작이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극장에서 봤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본 애니메이션 중 온 가족이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즐길 유일한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트롤 : 월드 투어]는 2017년 국내 개봉했던 [트롤]의 속 편이다. [트롤]은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는 트롤 왕국의 긍정공주 파피(안나 켄드릭)가 걱정병 친구 브랜치(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우울종결자들이 모여 사는 버겐 타운에서 모험을 하는 이야기가 흥겨운 노래와 함께 펼쳐졌던 알록달록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었다. [트롤]에 이은 [트롤 : 월드 투어]는 여왕이 된 파피가 브랜치와 함께 록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없애려는 록 트롤 왕국의 여왕 바브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속 편 영화가 언제나 그러하듯이 [트롤 : 월드 투어] 역시 전 편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시작한다. 파피와 브랜치가 사는 트롤 왕국 외에도 서로 다른 외모와 노래를 가진 5개의 트롤 왕국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함께 어울려 지냈지만 음악의 차이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었고, 결국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왕국을 세우게 된다. 파피가 여왕으로 있는 팝 트롤 왕국을 중심으로 록 트롤, 테크노 트롤, 클래식 트롤, 컨트리 트롤, 펑크 트롤 왕국까지. 문제는 록 트롤의 여왕 바브가 록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없애기 위해 월드 투어에 나섰다는 점이다.
1편에서도 그랬듯이 긍정적인 마인드가 매력인 파피는 바브의 음모는 눈치채지 못한 채 바브의 월드 투어를 계기로 6개의 트롤이 왕국이 다시 예전처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바브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걱정병이 매력인 브랜치는 바브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결국 파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함께 길을 떠난다. 무한 긍정 파피와 무한 부정 브랜치는 그렇게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메꾸며 티격태격하다가도 찰떡 호흡을 보여준다.
세계관이 넓어진 만큼 음악도 다양해졌다. 1편이 주로 팝 음악 위주로 펼쳐졌다면 [트롤 : 월드 투어]는 팝은 물론 록, 테크노, 컨트리 등 다양한 음악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 특히 비록 왕국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K 팝이 엄연한 음악 장르로 인정받는 장면이 나와 깜짝 놀랐다. [트롤 : 월드 투어]의 개봉 당시 레드벨벳의 노래가 삽입되었다는 정보는 얼핏 듣긴 했지만 실제로 귀에 익숙한 레드벨벳의 '러시안룰렛'이 영화 속에 흘러나와 영화를 보던 우리 가족을 즐겁게 했다. 그중에서 파피가 우울한 컨트리 트롤 왕국에서 흥겨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며 팝 히트곡 퍼레이드를 부를 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나와서 뿌듯함마저 느꼈다. 우와! 우리 K 팝의 위상이 대단한가 보다.
[트롤 : 월드 투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겹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영화의 알록달록한 색채와 흥겨운 음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에서와 같은 어른을 위한 교훈,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에서와 같은 감성적 분위기 따위는 이 영화에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좋았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흥겨움. 그것이 코로나19 시대에 내가 진정으로 원한 애니메이션의 재미일지도... 암튼 영화를 보고 나니 무너가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