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

수선화는 진한 녹색 줄기 끝에 나팔 모양의 꽃이 핀다. 꽃의 가운데 부분과 그곳을 감싸고 있는 바깥 부분의 꽃잎이 둘 다 노란 것도 있고, 가운데는 진한 노란색인데 바깥쪽은 연한 노란색인 경우도 있다. 수선화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꽃의 나팔 모양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런 수선화의 꽃말은 나르시시즘(자기애, 자아도취)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보이오티아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나르키소스. 나르키소스는 용모가 아름다워 주변 처녀들과 님프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았고, 여러 님프들은 나르키소스를 흠모하다 거절당해 고통을 겪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르키소스에게 거절당한 이들 중 하나가 나르키소스도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달라 빌었고,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주었다. 헬리콘 산에서 목이 말라 샘을 찾아간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자기 자신을 흠모하다 샘에 빠져 죽게 된다. 그 후 그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나르키소스(수선화)이다.

나르키소스의 자기사랑은 좀 극단적이다. 그러면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린 날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고 살뜰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보다 내 주변 사람에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에너지는 바닥이 나고야 말았다. 이런 경험을 몇 번이고 하다가 감정과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는 건 나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결국 좋지 않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남을 챙기는 것처럼 나도 챙길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그분의 대답이 이랬다. 나를 잘 챙기고 싶다면 우선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보이는 모습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알아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당시 갓 30대가 되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선 어렴풋이 느낌만 있을 뿐,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엔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일 줄이야.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싫어하는 것을 적어보고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는 과정에 알게 된 것이 있다. 나 자신을 잘 알려면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스스로와 남을 아끼면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 배운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르키소스같이 자신을 사랑하다 보면 나 말고 주변을 둘러볼 수 없게 되고, 자신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오늘부터라도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나와 친구가 되어 보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적어보고, 나와 마주해 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의 출발이 이것부터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꽃 한 송이 하실래요 <홍사라> 글그림

책이있는풍경, 2020년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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