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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개빈 후드

주연 : 키이라 나이틀리, 랄프 파인즈, 맷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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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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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오피셜 시크릿]은 크게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다. 키이라 나이틀리를 비롯하여 랄프 파인즈, 맷 스미스와 매튜 구드까지 캐스팅은 분명 화려하지만 워낙 조용히 개봉했다가 조용히 사라진 영화라서 영화적 재미, 완성도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 주말을 마무리하며 별생각 없이 보기 시작한 [오피셜 시크릿]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국가의 일급기밀을 유출한 정보부 요원의 용기, 제보를 꼼꼼히 확인한 후 특종을 터트린 신문 기자의 직업윤리, 그리고 인권 변호사의 치밀한 변론 준비까지 세세하게 담아낸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영국이라는 나라가 부럽기까지 했다.

[오피셜 시크릿]은 미국의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며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을 준비하던 200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UN의 찬성 표가 절실한 상황. 이에 미국 국가 안보국은 영국 정부통신본부에 불법 도청 협조를 요청한다. UN 안보리 이사국의 약점을 알아내 이라크 전쟁에 찬성 표를 던지도록 협박하려는 의도이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묵인 아래 불법 도청 명령이 정부통신본부에 내려지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캐서린 건(키이라 나이틀리)는 미국 국가 안보국이 보낸 메일을 빼돌려 반전 단체에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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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충성을 맹세한 국가는 정권이 아닌 국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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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캐서린 건의 행동은 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의문이 제시된다. 일급기밀을 유출한 캐서린은 정부통신본부에서 해고된 것은 물론 공무상 비밀 엄수법 1조 1항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다. 그녀의 상관, 경찰, 검찰은 캐서린에게 다그친다. '당신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기로 다짐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캐서린의 대답은 단호하다. 정권은 바뀔 수 있지만 국민은 영원하다고...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국가는 정권이 아닌 국민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 부시 행정부와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영국 국민은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이 캐서린의 주장이다.

캐서린의 주장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러면서도 신선했다.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 사찰 등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도 국가를 위해서라며 이를 정당화했던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을 생각하면 캐서린의 용기가 부럽고, 부끄러웠다. 스스로 자신이 일급기밀을 유출했음을 밝힌 캐서린. 그로 인해 그녀가 짊어져야 할 온갖 고초들을 그녀는 묵묵히 버텨낸다. 그리고 말한다.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국가에 충성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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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에 대처하는 언론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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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유출한 기밀문서는 베테랑 신문 기자인 마틴 브라이트(맷 스미스)에게 전해진다. 정부 권력에 빌붙어 이라크 전쟁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는 신문사 내부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틴은 UN 안보리 이사국 불법 도청 문건을 기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섣부르게 특종을 터트리지 않는다. 이 문건이 진짜 미국 국가 안보국에서 보낸 것인지 철저한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발신자인 프랭크 코자라는 인물이 미국 국가 안보국에 실존하고 있다는 점과 문건에 쓰인 단어가 미국 국가 안보국이 실제 사용하는 것임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신문을 싣는다. 하지만 그렇게 철저한 검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실수 때문에 미국 보수 언론에 의해 신빙성을 의심받는 처지가 되지만...

[오피셜 시크릿]에서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마틴 브라이트와 같은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언론 기사를 보면 어느 한 가지 이슈가 생기면 '단독', '특종'이라는 제목으로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거짓 뉴스들이 판을 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며 부끄러워해야 한다. 토니 블레어 정부의 가슴이 비수가 될 수도 있는 특종을 눈앞에 두고도 마틴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특종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국민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기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나라엔 마틴 브라이트와 같은 진정한 언론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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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상대로 목숨을 건 변호를 선언하는 인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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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실을 위해 기밀문서를 유출했다고 하지만 캐서린 건의 유죄는 거의 확실시된다. 영국 정부는 캐서린의 남편이 난민 출신이라는 약점을 이용해서 캐서린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하지만 인권 변호단의 벤 에머슨(랄프 파인즈)이 캐서린의 변호를 맡으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영국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벤에게 압력을 가하는 상황. 하지만 벤은 '캐서린을 기소한다면 캐서린의 무죄를 위해 목숨을 걸고 변호를 하겠다'라는 단호한 의지만 되돌아온다. 벤은 애초에 이라크 전쟁이 불법이었음을 밝혀낼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고, 이에 검사가 재판을 포기하며 캐서린의 극적인 승리로 이 사건은 마무리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재판이 진행되기 전에 먼저 여론전이 펼쳐졌을 것이다. 언론은 캐서린의 남편이 무슬림 난민 출신이라는 것을 부각하며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이렇게 캐서린의 남편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정의와 진실을 위한 캐서린의 용기 있는 행동은 점점 의도가 불순하다는 식으로 재판 전에 벌써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벤은 '이 사건에 여론전은 필요 없어.'라며 캐서린의 기밀문서 유출 사건과 캐서린의 남편을 철저하게 분리시켰고, 그 결과 정당한 승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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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기극에 맞선 한 개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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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피셜 시크릿]은 이라크전이라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 사기극에 캐서린 건이라는 한 여성이 맞서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캐서린뿐만이 아니다. 캐서린이 빼돌린 기밀문서를 기사화한 언론인 마틴 브라이트와 캐서린의 변호를 맡은 벤 에머슨 역시 캐서린과 똑같은 비중으로 영화에서 다뤄진다. 그만큼 캐서린의 용기 있는 행동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성숙한 대처가 뒤따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본 후 영국 사회가 부러웠던 이유이다.

지금은 모두가 안다. 이라크에는 대량살상 무기가 없음을... 이라크 전쟁은 대량살상 무기를 핑계 삼은 부시의 ㄱ대한 사기극일 뿐이라는 것을... 권력을 이용한 거대한 사기극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캐서린 건과 같은 용기 있는 개인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 있는 공익 제보자가 나오려면 이 영화에서처럼 성숙한 시민 의식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 별 기대 없이 본 [오피셜 시크릿]은 나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