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사인 장은 오래 전 견습생이던 시절, 고급 콜걸 후아가 자신의 다리를 쓰다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후 그는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 나가지만 다른 남자들을 위해 그녀가 입을 옷을 정성스레 만들며 그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잘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내 전담 재단사가 되겠지

내 옷을 만들 땐

오늘 이 느낌이 영감이 돼 줄 거야

당신 몸은 잘 아니까...

손으로 재도 돼요

기억해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내 손길도?

그만 날 잊고...

진짜 사랑을 찾아 봐요

이리 와요

당신의 친절에 보답 한 번 못했지

영영 못 갚을까 두려워

난 모든 걸 잃었어요

전 재산인 몸뚱이도 이젠 다 망가졌고

성한 건 손뿐이죠

사회적 거리두기

이제는 일상용어처럼 쓰이지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가 확산되기 전까지 내 삶에서 저런 말을 듣게 될지도 말할지도 몰랐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고 있었다.

왕가위의 중편(40분) ‘그녀의 손길’을 보기 전 우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을 알아야만 한다. 당시 장국영은 자살을 했고, 홍콩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로 한창 난리가 났을 때였다. 장국영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사스는 무척 큰 영향을 끼친다.

왕가위는 사람들이 사람을 꺼려하는 모습을 보며, 접촉에 대한 거부감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영화에 반영시키려고 했고 처음 의도와는 다른 지금과 같은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만들면서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한 사람이라(늘상이고 항상이고) 딱히 새삼스럽진 않지만 접촉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 때문에 미루고 있다가 다급하게 보게 됐다. 지금 상황과 가장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젼’을 꼽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그건 이미 봤고. 다만 접촉에 대한 이야기면서 무척 관능적인(혹은 도착적 페티시적) 영화기도 하다. 왕가위의 영화 중 가장 성적인 영화고 대담한 영화라 말할 수 있다.

간단하게 내용을 말한다면 재단사와 고급 창부가 어떤 식으로 만나 서로 감정을 나누는지를 다루고 있다. 왕가위 영화답고 그만의 방식으로 이끌어 간다. 중편으로 만들기 딱 적당한 영화다. 더 길어졌다면 심심하게 느껴졌을 것 같고.

공리를 위한 영화다(장첸은 잘 거들고 있고). 정말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누구나 유혹에 빠질 정도로.

점점 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우아하게 연기하고 있고 담아내고 있다. 공리가 항상 예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반대로 우러러보는 여성을 엿보는 재단사를 연기한 장첸도 훌륭하다. 무력함에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그녀 곁에 머물고 있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를 떠나보낸 다음 말없이 눈시울을 붉히는 그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어진다. 삶이 그런 식이고 세상이 다 뜻대로 되는 법은 아니지만 잘 될 것 같다가 안 풀리니 더 안타깝다.

왕가위의 영화는 대부분 과거가 배경이었고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옛 시절을 보여주며 꿈을 꾸듯 일렁이고 있다. 일상적이고 어쩌면 남루한 공간들을 떠돌지만 이상할 정도로 고급스러움을 버리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다.

왕가위 특유의 분위기와 리듬을 잘 보여준다. 영상미를 빼놓을 순 없겠지.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있는 중편이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걸 놓치는 경우가 꽤 있으니 아직 못 봤다면 꼭 찾아보길 바란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