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멋진 연구 재료입니다

‘가스등’이라는 영화를 아냐는 질문을 들으면 대부분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가스등’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따로 원작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다. 어쩌다가 원작을 봤고 결과물도 나쁘진 않지만 결국에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가스등’만 말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원작을 알면서도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영화를 먼저 생각할 것 같다. 원작으로서는 안타깝고 억울하겠지만 별 수 없다. 그게 할리우드의 힘일 것이고 스타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는 기억도 가물거리는(솔직히 뭘 봤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가스등’의 원작이고 아주 다른 이야기로 꾸며져 있지도 않(다고 한)다.

한 사람(여성)을 바보(더 정확하게는 정신병자)로 만들다가 실패하는 영화다.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당시보다 여성이 궁지에 몰린다는 것에 더 강조점을 둘 것 같다. 간신히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곤 있으나 뒷맛이 개운하진 않다. 제정신인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모습이 딱히 흥미를 끌지도 않고. 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망가뜨리는 과정에 재미를 느끼고 싶진 않다.

1940년에 발표했고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기에 만든 영화치고는 부실함을 찾을 수 없었다. 등장인물의 심리에 집중하고 있고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에서 아쉬움을 느끼진 않았다. 다만, 이 영화를 보기 전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가스등’을 봤다면 이런저런 차이나 비교를 하며 보게 될 것 같다.

기억나지 않아 특별한 느낌 없이 보았지만 어쩐지 괜히 비교해보고 싶어진다.

아기자기하다면 그렇다 할 수 있고 영국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면 그것도 맞을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보여주는 반전과 진실에 통쾌함보다 범인의 의도대로 끝났다면 여인의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라는 아찔함이 더 크다.

정신병자로 몰리는 게 여성이기 때문에 더 악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비해서 좀 더 사회적 시선이 예민한 지금 시대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떤 반응일까? 라는 궁금증도 든다. 악취미로 가득하다는 말도 나올 수 있고 세상의 본모습을 폭로한다는 말도 가능할 것 같다.

빅토리아 시대(아마 맞겠지?)의 갑갑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안개 자욱한 런던의 은밀함을 잠시 엿보기도 했고. 남 얘기하길 좋아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조금만 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눈총 주는 것도 그렇고.

좋게 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가스등’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참고 : 실내극이니 연극으로 만들어도 좋은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